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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2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1) 능침은 제왕이 묻힌 능(陵)과 추모하는 장소인 침(寢)을 합친 말이다. 능원(陵園)에 침을 조성하는 능침 제도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릉에는 능의 제사와 능역 보호를 담당한 사찰이 설치되었다. 조선의 500년 역사와 함께 지속된 사찰은 재궁(齋宮)[1], 능침사(陵寢寺), 조포사(造泡寺)[2]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렸으며 그 명칭에 따라 담당하는 역할도 조금씩 변모하였다. 능침사는 사찰 내에 왕이나 왕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능 주인의 제사를 담당한 독립된 사찰을 의미했다. 조선왕조의 개창자 태조 이성계(李成戒, 1335~1408)의 능은 건원릉이다. 건원릉은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해 있으며, 산릉 조성이 끝난 후 태종은 능역 안에 불교식 재.. 2023. 2. 22.
연주암과 무위사, 비운의 왕세자 효령대군의 사찰(1) 왕(王)의 조건 술을 한 방울도 못해서 왕이 되지 못한 효령대군,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은 셋째인 충녕대군만큼이나 학문적 깊이와 인격을 지녀 국왕이 될 그릇이었다. 그러나 효령대군에게는 결정적 결함이 있었으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일찌감치 눈 밖에 난 장남 양녕은 차지하고서라도 태종이 차남 효령마저 제치고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심한 것은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이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 마시기 때문이었다. 왕(王)의 조건 당시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마다 몇 차례씩 조선에 찾아오는 명나라 사신들 접대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명나라 사신들은 조선 왕들과 취하도록 마시며 조선의 왕을 시험하곤 했다. 그러니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는 ..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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