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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17

보문사와 향일암,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해수관음도량(1) 우리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의욕이 떨어질 때, 또는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할 때 주로 산과 바다로 달려간다. 아침부터 운전해서 바닷가에 다다를 때쯤이면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돼서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특히 아침 바다 해변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고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원시 시대부터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도처로 4대 해수관음도량 중 3곳(석모도 보문사, 돌산도 향일암, 남해도 보리암)은 바다를 바라보는 섬에 있고, 나머지 한 곳(낙산사 홍련암)은 강원도 양양 절벽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섬에 있는 사찰도 이제는 전부 다리가 놓여 언제든지 마.. 2023. 2. 24.
사찰에서 자주 보는 한자어 중국 산신성에 있는 화산은 험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 화산이 얼마나 험준한지 이 산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퇴지투서처(韓退之投書處)에 관련된 이야기다. 한퇴지투서처는 화산의 많은 등산로 중 '창룡령(蒼龍嶺)'이라는 곳에 있다. 검푸른 용의 등줄기를 닮았다 하여 창룡령이라 불리는, 칼등 같은 가파른 절벽 능선 위의 길이다. 경사도가 40도 정도 되며 530개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이 길도 걸어 내려왔는데, 누구나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두려움을 느끼는 길이다. 당나라 최고 문장가였던 한유(韓愈, 768~842)가 화산에 올라 하산하느 길에 이 창룡령에 이르게 되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바위 봉우리가 상하 수직으로 드리워졌고, 바위 산의 능선은 칼날과 같았다. 좌우의 낭떠러지 골짜기가 천.. 2023. 2. 23.
마곡사와 백담사, 일제 시대 우리 민족 선각자들 정기가 어린 사찰(1)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8.29~1944.6.29)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집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1896년 선생은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 .. 2023. 2. 22.
여주 신륵사,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2) 여주 신륵사는 5월에 하루 정도 가족 여행하기에 아름다운 사찰이다. 신륵사에 가기 전에 먼저 세종대왕릉을 방문하고 이어지는 코스로 능침사인 여주 신륵사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세종대왕의 능이 지금의 자리로 이장된 후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연장되었다면서 '영릉가백년'이란 말이 생겨났다. 또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영릉은 세종이 묻힌 곳인데, 용이 몸을 돌려 자룡으로 입수하고, 신방에서 물을 얻어 진방으로 빠지니 모든 능 중에서 으뜸이다'칭할 정도다. 그러니 명당에서 기운을 받고 신륵사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몰락해 가던 신륵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세종대왕릉의 능침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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