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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남해 금산과 보리암

by 3000포석정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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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남해 보리암 전경, 월간 山 참조>

금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ㆍ이동면ㆍ삼동면
-산높이 : 704.9m
 

100대 명산 선정이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바다와 섬, 일출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본래 보광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을 비롯하여,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 등 38경이 유명하며,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소재해 있다.
 

금산 상세정보

남해에는 비단으로 몸을 감싼 산이 있다. 비단 금(錦)자에 뫼 산(山)자를 이름으로 한 금산이다. 금산은 원래 원효대사가 산자락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음으로 해서 보광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이 산에서 기도를 하며 임금이 되게 해주면 금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그 넓은 산을 비단으로 두를 일을 걱정하다 진짜 비단이 아닌 비단 금자를 사용해 금산이라 이름을 지어줌으로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금산에 오르면 원효대사가 신라 신문왕 3년에 창건했다는 보리암과 가야의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태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지고 온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삼층석탑뿐 아니라 관음봉, 화엄봉, 일월봉, 자라바위, 좌선대, 상사바위, 부소암, 쌍홍문 등의 바위와 망월대가 있다.
 
금산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금산 38경이 모두 보인다고 할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남해 금산은 남해섬을 대표하는 산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말 그대로 거의 다 바다로 지정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산이 해상 공원에 포함된 것이 금산이다.
 
금산은 비단을 두를 뻔한 산으로 유명하다. 금산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다.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보리암 아래 있는 '이태조기단'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이 왕이 되면 이 산을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뒤, 약속을 지킬 일을 생각하니 난감했다. 이때 사려 깊은 신하가 산 이름을 하사하면 비단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제안해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 이전의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꿈으로 이성계는 자신의 약속을 절묘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매표소에서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왼편으로 사선대가 올려다 보인다. 사선대는 먼 옛날 동서남북의 네 신선이 조그만 암봉에서 놀았다는 곳이다. 사선대 맞은편에는 절벽을 이룬 웅장한 바위는 만장대이다.
 

 

 

금산 등산코스

복곡탐방지원센터에서 버스를 타면 정상 금산 정상과 보리암 근처까지 바로 갈 수 있으니, 노약자나 유아를 동반하신 분들은 복곡탐방지원센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금산1코스 난이도

-금산탐방지원센터(금산입구)에서 도선바위, 쌍홍문, 보리암을 거쳐 금산정상으로 오르는 - 금산1코스(2.2km, 1시간30분소요)
- 산과 역사, 바다와 자연이 탐방객의 걸음을 붙잡는 한려해상의 대표 탐방코스
 
한려해상 남해금산 산행 코스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300리 아름다운 바닷길 풍경으로 유명하다. 해상공원에 있는 산악형 지형으로서 산과 바다 · 역사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으며, 연간 65만명의 탐방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특히 4~5월에는 남쪽 해안가에 자생하는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피어나며, 비단과 같은 붉은 단풍이 산자락을 물들이는 10~11월도 탐방로를 오르기에 좋다.
 
금산탑방지원센터(금산입구)~쌍홍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대표 탐방로인 금산1코스는 금산탐방지원센터(금산입구)~도선바위~쌍홍문~보리암~금산정상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금산탐방지원센터(금산입구)에서 쌍홍문까지 오르는 코스는 1.7km이며 구간에 오르는 시간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쌍홍문까지 오르는 길은 거리는 짧지만 경사도가 심하고 탐방로 곳곳에 돌이 많기 때문에, 발밑을 주의하면서 천천히 산행을 하여야 한다.
 
쌍홍문~금산정상 구간
쌍홍문에서 금산정상까지 코스는 0.5km구간이며 오르는 시간은 약 30분이 소요된다.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로 대부분이 목재데크와 안전난간으로 정비되어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으며, 탐방로 주변에 볼거리와 안내간판이 많아 구경거리를 따라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보리암 역사와 유래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하고 수도하시던 절로서 금산(錦山)의 한복판에 관음봉을 기대고 위치한 유서 깊은 절이다.
 
바위의 장엄한 기운이 뭉쳐 의젓한 모습으로, 용을 타고 전후좌우 절을 하는 남순동자 바위와 관음조가 읊조리는 듯한 바위들을 거느리고 남쪽바다 용왕에 무슨 가르침을 내리는 듯하다. 보리암은 이런 바위들을 등지고 놓여 있다. 원래는 남해 보광산상 관세음보살 시현(示現)도량으로 그 옛날에 원효대사께서 이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부르고, 동록(東麓)에 범우(梵宇)를 지어 보광사라 불렀다.
 
그 뒤에 조선태조 이성계가 기도하여 왕위에 오른 일을 감안하여 이씨왕조의 원당으로 또한 호국기원도량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생긴 그대로 절이며, 바위머리마다 자연법당인 이곳은 그늘이 짙은 사부대중들의 기도 수도처라 할 수 있으니 뉘라서 이곳을 아니 그리워하랴.
 
보리암은 고대로부터 유래가 깊어왔으니 고대의 가락국 김수로왕도 이곳에서 기도하고 대업을 이루었다고 하며 왕의 칠왕자도 외숙인 장유국사(長有國師) 옥보선인(玉寶仙人)을 따라 출가하여 남해 낙가산 금산(錦山) 보리암에서 수도하다가 다시 가야산을 거쳐 지리산 반야봉에서 수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다고 한다.
 

 

 

보리암 주요 불교 문화유산

<남해 보리암전삼층석탑,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리암전삼층석탑
보리암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더욱 유명해졌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보주(寶珠:구슬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허태후(김수로의 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 하나, 두꺼운 지붕돌 과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은 독립적인 관음보살상과 선재동자 용왕이 협시한 불감 형식의 작품이다. 현재 불감의 윗 부분은 없어졌고 남아 있는 형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형식은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불감(1637~1644년)을 시작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행하였다.
보리암 관음보살좌상은 통통한 뺨, 보발이 없는 점, 대칭적인 연판 양측 면에 늘어진 옷자락 등에서 조선 전기적 특징을 계승한 조선 후기 17세기 작품으로 판단된다.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한 관음보살 삼존의 도상적 특징을 지닌 점과 사례가 적은 목조불감 형식, 17세기로 추정되는 제작시기 등 자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불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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