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국보와 보물)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흥국사 역사와 유래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기암대사가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이 절의 승려들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했는데, 절은 전란중에 승병의 훈련장소로 쓰이다가 불타버렸기 때문에 1624년(인조 2) 계특대사가 삼창했다.
예로부터 흥국사에는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흥국사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는 동안 많은 승병(僧兵)들이 왜적과 싸웠던 호국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흥국사 문화유산
종목 | 명칭 | 시대명 |
보물 | 여수 흥국사 대웅전 | 조선시대 |
보물 | 여수 흥국사 홍교 | 조선시대 |
보물 |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 | 조선시대 |
보물 |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 조선시대 |
보물 | 흥국사 수월관음도 | 조선시대 |
보물 | 흥국사 십육나한도 | 조선시대 |
보물 | 여수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 조선시대 |
보물 | 여수 흥국사 동종 | 조선시대 |
보물 | 여수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ㆍ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 조선시대 |
보물 |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 조선시대 |
▶대웅전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으나 절이 모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인조 2년(1624)에 다시 세운 것들이다. 대웅전은 인조 2년(1624) 계특대사가 절을 고쳐 세울 때 다시 지은 건물로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절의 중심 법당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고 불상이 앉아 있는 자리를 더욱 엄숙하게 꾸민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놓았다. 불상 뒷면에는 숙종 19년(1693)에 그린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보물)'이 있다. 같은 양식을 가진 건물들 중 그 짜임이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홍교
흥국사 입구에 있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이다. 개울 양 기슭의 바위에 기대어 쌓았는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서로 맞추어 틀어 올린 다리밑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양옆으로는 둥글둥글한 돌로 쌓아올린 벽이 학이 날개를 펼친 듯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홍예의 한복판에는 양쪽으로 마룻돌이 튀어 나와, 그 끝에 용머리를 장식하여 마치 용이 다리밑을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다리로, 지금까지 알려진 무지개형 돌다리로서는 가장 높고 길며, 주변 경치와도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후불탱
흥국사대웅전후불탱(興國寺大雄殿後佛幀)은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ㆍ보살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탱화로, 비단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4.27m, 세로 5.07m이다. 탱화는 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탱화는 화면 중앙에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앞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이 배치되었고, 그 옆으로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따르는 무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석가여래상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쳤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모습이다. 채색은 대체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졌는데, 머리광배의 녹색은 지나치게 광택이 있어 은은하고 밝은 맛이 줄어든다. 그러나 꽃무늬나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결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숙종 19년(1693)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信)과 의천(義天) 두 승려화가가 그린 이 탱화는 원만한 형태와 고상한 색채의 조화로 17세기 후반기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노사나괘불탱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교그림을 말하는데, 흥국사노사나괘불탱은 본존불만을 전체 화면에 꽉 차도록 그린 단독불화 형식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몸광배에 둥근 머리광배를 하고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조그만 불상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두 손을 어깨 위까지 들어 좌우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상단에는 노사나불과 관련이 있는 천궁과 같은 건물의 처마 끝이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는 좌우로 보탑이 배치되어 있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 스님과 함께 활동했던 비현 스님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선이 아름답게 구사되고 있어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불화의 뒷면에는 후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수월관음도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흥국사 수월관음도에는 둥근 몸광배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이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오른 무릎 아래쪽에는 선재동자가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합장하고 서 있다. 맨 하단에는 일렁이는 물결이 묘사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양팔 좌우로는 푸른 대나무 및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과 새가 표현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음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따르고 있는 관음도로서 부분적으로 도식적인 면이 엿보이지만, 안정된 구도에 적ㆍ녹ㆍ청색의 조화로운 배색으로 화려함과 따뜻한 느낌을 준다. 또한 단정하고 적당한 얼굴표현과 신체비례, 바위면 처리에 있어 회화성 넘치는 표현 기법 등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 스님이 그린 그림으로, 비록 화면 하단부에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조화로운 색채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십육나한도
여수시 영취산에 있는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나라가 번성하면 이 절도 함께 번창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어 흥국사라고 전한다. 나한은 아라한이라고도 하는데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하는데 흥국사십육나한도는 응진당(應眞堂)에 보관되어 있다.
중앙의 영산회상탱은 없어지고, 지금은 나한도 여섯 폭만이 남아 있다. 좌우 각각 세 폭씩인데, 중앙의 본존불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1ㆍ3ㆍ5ㆍ7ㆍ9ㆍ11ㆍ13ㆍ15존자가, 우측에는 2ㆍ4ㆍ6ㆍ8ㆍ10ㆍ12ㆍ14ㆍ16존자가 대칭을 이루면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구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불화에 수묵화 기법을 도입한 의겸 스님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십육나한도로, 이후 조선 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목조석가여래삼존상
이 삼존상은 흥국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협시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는 각각 자씨보살대명숭정(慈氏菩薩大明崇禎), 제화보살대명숭정(提花菩薩大明崇禎)이라는 명문이 타출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삼존상이 수기삼존상(授記三尊像)으로 17세기 전반의 숭정연간(1628~1644)에 조성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삼존상은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서 양감이 잘 표현되었으며, 손과 발의 표정이 잘 살아있고, 옷 주름이나 장신구의 표현도 유려하다. 불상은 17세기 조각의 단순함을 잘 반영하고 있고, 두 보살상은 자연스러운 자세와 장대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17세기 전반의 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고, 도상과 양식면에서도 조선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상으로 평가된다.
▶동종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金龍岩)ㆍ김성원(金成元) 등과 더불어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애립(金愛立)이 순천 동리산의 대흥사 종으로 1665년에 주성한 종이다. 높이 121㎝의 크기로서 당시로서는 대종에 해당한다.
종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져 마치 포탄과 같은 모습을 하였다.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는 쌍룡(雙龍)을 종 고리로 삼고 천판에는 큼직한 연화문대를 돌렸다. 천판과 만나는 종의 어깨부분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둘러져 있으며, 몸체에는 연곽대와 보살상 및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어 있다. 종신에 새겨진 문양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하며 잘 정돈된 느낌을 보여준다.
이 종은 사인비구와 버금가는 기술적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 범종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인 동시에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ㆍ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여수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한 시왕·권속일괄은 1648년(인조 26) 수조각승 인균(印均)을 비롯한 12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부푼 눈두덩 사이로 짧게 치켜 올린 눈이 인상적이다. 단정한 신체에 표현된 옷 주름은 강직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잘 조화시켜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살려내었다. 시왕과 권속상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인 특징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흥국사 무사전 조각들은 17세기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이 모두 존속하고, 조성주체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는 한지에 그려 벽에다 붙여 만든 첩부벽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첩부벽화는 미황사 천불도 벽화에서 보듯이 보통 천장의 장엄화나 대량의 별화에 사용되었으나, 후불벽 전면에 예불화로서 그려진 예로는 이 벽화가 유일하다. 현재 국내에 전하는 조선후기 주불전 후불벽 뒷면의 관음보살도는 10여 점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벽에다 직접 그린 것이다.
이 벽화는 양식적으로 관음보살 상호와 어깨에 늘어진 보발, 의습에 시문된 문양 등이 수화승 天信이 조성한 흥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1693년)와 유사하며, 특히 어깨의 보발 표현 및 선재동자의 착의방식, 정병의 기형 등에서는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와 함께 바다 가운데 피어 오른 연꽃을 좌대로 하여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정병 등을 표현한 독특한 구성은 어떤 그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적인 도상이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한번은 가 볼만한 명산, 영취산과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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