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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연화산과 옥천사

by 3000포석정 202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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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연화산, 월간 山>

연화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ㆍ영현면

-산높이 : 524m

 

100대 명산 선정이유

경관이 아름답고 오래된 사찰과 문화재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중턱에 큰 대밭이 있음. 유서 깊은 옥천사(玉泉寺)와 연대암,백련암, 청연암 등이 유명하다.

 

 

 

연화산 상세정보

연꽃을 닮았다고 해 이름지어진 연화산은 고성의 산을 대표함에 부족함이 없다. 고성읍 서북쪽에 위치했으며 1989년 개천면과 영현면을 포함한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옥천사는 천년고찰 가람의 배치가 섬세한 화엄 10대 사찰의 하나다. 연화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쪽빛 바다의 당항포가 한눈에 들어오고 연봉속에 파묻힌 옥천사의 전경과 불교유물전시관을 볼 수 있다. 산세가 순탄하고 길이 잘 닦인 산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암천을 따라 고성읍 서북쪽 12km 거리에 있는 산으로 옥녀봉, 선도봉, 망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의 북쪽 기슭에는 유서깊은 옥천사와 백련암, 청연암, 연대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특산물로는 송이버섯과 산딸기 등이 유명하다.

 

옥천사 대웅전 뒤에 위치한 옥천샘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항상 수량과 수온이 일정하며 이 샘의 물은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1948년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연화산 등산코스

1코스 : 도립공원 주차장~매봉~연화산~남산~탄금봉(장군봉)~주차장(9.5km, 옥천사 환 종주 코스 5시간 30분)

2코스 : 도립공원 주차장~매봉~연화산~남산~황새고개~옥천사~주차장(7km)

3코스 : 옥천소류지~옥천사~매봉~느재~운암고개~청련암~옥천소류지(4.9km)

4코스 : 느재~월곡재~시루봉~적멸보궁~연화산~운암고개~느재(산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

 

<연화산 느재 편백숲, 월간 山>

 

옥천사 환 종주는 이름이 붙은 봉우리만 일곱 개에다 고개는 네 개를 넘는다. 낙타 등 같이 오르내림이 심해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한다. 옥천사 관람을 하거나 체력에 부친다면 월곡재를 제외한 세 곳의 고개에서 옥천사로 하산하면 된다.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해 공룡발자국 화석 옆 덱 계단~356m봉~매봉(연화1봉)~느재~느재(편백쉼터)~월곡재(싸리재)~시루봉(전망덱)~장기바위~(월곡재)~연화산 정상~운암고개~남산~황새고개~선유봉~옥녀봉~탄금대(장군봉)~도립공원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이다. 산행거리는 약 9.5㎞이며, 5시간 30분 안팎이 걸린다.

 

100대 명산 대찰(名山 大刹) 이야기 - 종합

 

 

 

옥천사 역사와 유래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쌍계사 진감(眞鑑)선사 대공탑비(大空塔, 887년 건립)에 쓰기를,『쌍계사는 본래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으나 근처에 옥천사라는 절이 있어 한강왕이 쌍계사라 고쳐 제액(題)을 내렸다』고 하고있어 헌강왕 재위기간(875-885) 이전부터 이 곳 옥천사가 존재했음이 확실하다.

 

의상대사는당나라 종남산 지엄화상으로부터 8년간 화엄경을 배워 돌아온 후 해동에 화엄학을 펴기 위해 '화엄전교십찰(華嚴傳敎十刹)'을 창건하였는데, 그 때 건립된 사찰의 대부분이 반 신라적 기질이 농후한 옛 고구려, 백제의 수도 근교에 배치되어 있다. 이 곳 고성군에 '화엄전교 십찰'의 하나인 옥천사가 창건된 것은 이 지역이 소가야 지역으로 금관가야가 멸망한 진흥왕 23년 (562)까지도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에 항거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 소가야지역 주민들을 선무하기 위하여 옥천사를 창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상대사가 통섭만법 명일심(統攝萬法 明一心)의 화엄사상으로 우리민족의 사상을 통일하고자 한데 비추어 신라 조정은 통일된 3국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라 조정에 복종케 하는 데 뜻이 있었다. 양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사찰을 건립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므로 의상대사는 신라조정의 도움을 받아 '화엄전교십찰'을 창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화엄전교 십찰'이 성립된 시기는 신라 하대에 이르러 의상대사의 제자들에 의하여 완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옥천사의 창건연대를 부석사의 창건연대인 676년으로 보는 것은 그 전후에 옥천사가 창건되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의 옥천사 역사는 잘 남아 있지 않고 신라 말인 효공왕 2년(898)에 창원 봉림사를 창건한 진경국사 심희(眞鏡審希)가 이 절에 들어와, 먼저 주석하고 있던 낭림(郞林) 선사와 도반을 맺고 가람을 크게 수축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옥천사 불교 문화유산

<고성 옥천사 청동북(좌)과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청동북(보물)

고성 옥천사 청동북(固城 玉泉寺 靑銅金鼓)은 절에서 사용하는 청동으로 만든 소리내는 도구이다. 금고 또는 금구반자라고도 하며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의식을 행할때 두드려서 소리내도록 하였다. 이 쇠북은 지름 55㎝, 너비 14㎝로, 표면에 굵고 가는 선으로 4개의 테두리를 둘러 4개의 원을 만들었다.

이 쇠북은 처음부터 옥천사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지리산 안양사의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옥천사에 보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고면(鼓面)의 무늬가 뚜렷하고 손상이 없으며, 옆면의 글을 통해 만든 시기와 유래, 발원자와 제작자까지를 알 수 있어 당시 고려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1744년 화승 효안(曉岸)의 주도하에 11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되었다. 이 불화는 지장시왕도 1점, 시왕도 8점 등 총 9점으로 구성된 작품이었으나, 이 중 '제2초강대왕도'가 1976년 도난당해 결실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16년 프랑스에서 발견되어 국내 환수됨으로써 원래 봉안처인 옥천사에 보관되었고 '제2초강대왕도'는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보물)에 추가로 포함되어 지정되었다.(2017.10.31)

현재 옥천사 지장보살도는 색의 오염과 화면 꺾임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만, 본존과 다른 권속들의 상호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상태이다. 시왕도는 개체한 흔적이 없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장보살도와 제9도시대왕도는 바탕천의 재질이 비단이며, 나머지 7점의 시왕도는 모시바탕에 제작되었다. 18세기 명부전 불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좌)과 자방루(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산회 괘불도 및 함(보물)

'옥천하 영산회 괘불도 및 함'은 1808년(순조 8) 수화승 평삼(評三)을 비롯하여 18명의 화승들이 제작한 것으로, 20폭의 화폭을 붙여 만든 높이 10m 이상 크기의 대형불화이다.

가는 신체와 둥근 얼굴에 가늘게 묘사된 이목구비, 어린아이에 가까운 얼굴, 화려한 문양과 고분법(高粉法)을 사용한 기법,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청색과 흰색 등이 조화롭게 사용된 색채 등은 1769년 남해 용문사 괘불도, 1783년 화순 만연사 괘불도 등 18세기 후반의 괘불도 양식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괘불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괘불함 역시 옻칠로 마감하고 다양한 모양의 장석과 철물로 장식한 수려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기법적 측면에서도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또한 내부에 묵서로 제작연도와 제작자에 대한 기록도 있어 한국공예사 연구를 위한 자료로서도 주목된다.

 

자방루(보물)

「고성 옥천사 자방루」는 상량문 등 기록에 따르면 1664년에 법당 맞은 편에 위치한 정문(正門)으로 처음 건립되었고, 1764년에 누각형태로 중창되어 '정루(正樓)' 또는'채방루(採芳樓)'라 지칭하였다. 옥천사 사역 내로 진입하는 길은 자방루 양쪽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하는 방식(隅角出入, 문루 아래를 통하지 않고 옆으로 출입하는 방식)이다. 정면에는 '옥천사(玉泉寺)' 라는 편액이, 배면에는 '자방루(滋芳樓)' 가는 편액이 걸려있다.

자방루의 정면의 모든 칸에는 판문(板門)을 두어 개방과 폐쇄를 조절 가능하게 하고 있다. 대웅전을 마주하고 있는 배면에는 76cm 높이의 난간을 설치하여 개방하였다. 자방루는 평면구성이 내부 고주가 종단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대웅전 쪽 마루 한 칸을 없애고 외부공간으로 처리했으며, 자방루의 공포와 화반(花盤, 상부 목재를 바치는 부재), 고주 상부 보아지(기둥과 대들보를 연결하는 부재)의 화려한 장엄에서 조선후기 사찰의 누각건축에서 나타난 장엄의 사례 중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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