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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결사2

봉암사, 살아 생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사찰(2)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서기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하였다. 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을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여있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고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라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 그 후 봉암사는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고려시대에도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불교중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대선찰이다. 그런데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 2023. 3. 29.
봉암사와 봉정암, 살아 생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사찰(1) 우리나라 불교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님들의 결사(結社)[1]를 찾아보면 고려후기에 이루어졌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있다. 정혜결사는 정(定)과 혜(慧)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1188년 보지지눌(普照知訥)의 주도하에 시작된 결사이다. 당시 고려불교는 세속화되면서 승려들이 도는 닦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흐름이 있었다. 여기에 염증을 느낀 보조지눌은 당시 승과(僧科)에 합격한 엘리트였지만, 사찰의 주지로 나가지 않는다.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면서 재야로 나가 기존 불교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개성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으로 내려가 결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그 정혜결사 도량은 순천 송광사(松廣寺)였다. 경전 공부와 참선이 본래 ..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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