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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부여 무량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17)

by 3000포석정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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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량사 역사와 유래

옛 문헌에는홍산 무량사라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무량사가 위치한 지역이 행정구역으로 부여군 외산면에 해당되어 외산 무량사라 불리고 있다. 절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초기에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 때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량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고려시대
보물 부여 무량사 석등 통일신라
보물 부여 무량사 극락전 조선시대
보물 무량사 미륵불 괘불탱 조선시대
보물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조선시대
보물 부여 무량사 삼전패 조선시대

<무량사 오층석탑(좌), 석등(가운데), 극락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오층석탑

무량사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석등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극락전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ㆍ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미륵불 괘불탱

미래불인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여덟구씩의 화불을 그린 괘불인데,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를 드리는 대상으로 법당 앞 뜰에 걸어놓았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미륵불은 두 손으로 용화수 나뭇가지를 받쳐들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서 있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그려진 이 불화는 5단의 화면을 이어 한 화면을 만든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과 중후한 형태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데, 극락전의 주존으로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보살이 결합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삼전패

부여 무량사 삼전패는 1654년에 철학, 천승, 도균이 제작한 것으로 "二層殿丹靑畢後而兼備三殿牌(이층전 단청을 마친 후 삼전패를 겸비하였다)"라는 묵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왕실의 안녕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형태는 전형적인 불패 형식을 갖추었으며, 사실성과 조각성이 뛰어난 용 조각, 황금색과 홍색 위주의 단청, 보란을 갖춘 삼단대좌 등 공예기술도 뛰어나 조선 17세기 불교 목공예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정확한 제작 연대와 제작 장인들을 알려주는 묵서명이 있는 점과 규모가 큰 점 등에서 조선후기 불교목공예의 편년과 도상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어 의의가 크다. 특히 17세기 전․중반에 충청남도와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불화승과 조각승이 공동작업을 한 점이 흥미롭다. 이렇듯 무량사 삼전패는 구조와 도상, 기술적, 조성기의 사료적 가치 등에서 중요한 유물이며 현존하는 삼전패 중 예술성과 전체 구조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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