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힐링 사찰 여행

화순 운주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57)

by 3000포석정 2023. 7. 27.
반응형

'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국보와 보물)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주사 역사와 유래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 또는 靈龜山)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말사이다. 창건설은 3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는 설. 2. 운주(雲住)스님이 주도했다는 설. 3. 마고 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한 비보(裨補)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지형이 배(舟)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하고 합니다.

 

비보(裨補)사찰이라 함은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강한 곳은 부드럽게하고 허한 곳은 북 돋워줌으로서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도 호국과 중생들의 이익을 도모한 도선국사의 지혜가 담긴 사찰을 의미합니다.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에 고려 혜명(惠明)스님이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스님은 970년(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스님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어 운주사가 고려초기에 건립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481년(조선 성종 12년)에 처음 편찬되고 중종 25년(1530)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의 능성현(綾城縣)조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1984 ~ 90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홍치 8년(弘治八年, 1495, 연산군 1년) 운주사환은(雲住寺丸恩)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4번째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찰의 이름이 '운주사(運舟寺)' 뿐 아니라, '운주사(雲住寺)'로도 불렸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왜적에 의해 폐사되었다가 1800년경에 설담 자우(雪潭 自優)스님이 무너진 불상과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했으며, 1921년에 발간한 『도암면지』에 1918년 불자 16명이 시주하여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조각수법이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80여기의 석불, 21기의 석탑, 173기의 불재 및 탑재관련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조성연대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 운주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습니다.

 

 

 

운주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고려시대
보물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고려시대
보물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고려시대
사적 화순 운주사지 고려시대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좌)과 운주사 석조불감(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구층석탑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러하여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는데, 이러한 수법은 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형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였다가 1984년 보물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석조불감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다. 다탑봉(多塔峰) 골짜기에 자리한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 예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의 정상에 이르는 동안 여러 기의 석탑과 불상을 볼 수 있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좌)과 화순 운주사지(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원형 다층석탑

운주사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아 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하루낮 하루밤 사이에 도력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절에는 탑 18기, 불상 70구가 남아 있는데,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앞에 자리잡은 이 탑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형태에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따르지 않은 특이한 모양의 석탑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 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라 하겠다. 기단의 맨윗돌이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지붕돌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

 

 

 

화순 운주사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천 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ㆍ5층ㆍ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