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송광사 '사찰의 역사와 유래' 및 국보와 보물 11점에 대해서는 1편 내용에서 확인하실수 있으니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순천(조계산) 송광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56)-1편
지눌의 정혜결사
무신정변 이후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던 교종은 몰락하고 무신 정권의 후원을 받는 선종이 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선종 중심으로 불교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지눌이다.
지눌은 명종 18년이 되던 1188년에 공산(현재의 팔공산)의 거조사에 머물면서 세속화되어 가던 불교를 혁신(정화 운동)하기 위해 정혜 결사를 조직하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발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하였다. 이어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3년 동안의 참선 끝에 은둔생활을 탈피, 적극적 보살행의 현실 참여를 목표로 삼았다.
1200년 송광산 길상사(현재의 송광사)로 옮겨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설파, 깨달음 이후 남아있는 무명을 수행으로 사그라뜨리자는 돈오점수와 이론 학습과 참선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정혜쌍수를 주장하고 "선으로써 체를 삼고 교로써 용을 삼아야 한다."고 말해 선, 교의 합일점을 추구했다. 그의 사상에는 "교는 부처의 말씀이요, 선은 부처의 마음이라."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지눌은 종래의 9산 선문을 조계종에 통합하는 등 교종을 중심으로 교선일치를 시도한 의천의 천태종과 함께 고려 불교의 양대산맥의 내면적 통일을 기한 큰 업적을 이룩했다. 특히 의천의 천태종이 실패로 끝난 데 반해 지눌의 법통은 현재 대한민국 조계종이 주류로 자리잡을 정도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송광사 문화유산(국보와 보물들)
종목 | 명칭 | 시대명 |
보물 |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ㆍ십육나한탱 | 조선시대 |
보물 | 송광사 영산전 후불탱ㆍ팔상탱 | 조선시대 |
보물 | 순천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 | 고려시대 |
보물 |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 조선시대 |
보물 | 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복장유물 | |
보물 |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 | 조선시대 |
보물 |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 조선시대 |
보물 |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 |
사적 | 순천 송광사 | |
명승 | 조계산 송광사ㆍ선암사 일원 |
▶응진당 석가모니 후불탱ㆍ십육나한탱
순천 송광사 응진당(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에 있는 불화로, 정면 가운데 있는 후불탱화인 응진영산탱과 그 양옆에 각 4점씩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16나한도와 제석ㆍ범천탱화이다.
가운데 모셔진 응진영산탱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과 아난 등 5존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화면은 밝은 홍색과 황토색을 주색으로 청색과 초록이 부가된 화사한 느낌을 준다. 둥근 광배를 지닌 부처의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목구비가 작다.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에는 꽃무늬 장식단이 둘러졌고 무늬 장식이 매우 세밀하면서도 호화롭다. 양옆에 서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다양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두 보살과 부처 사이에 있는 두 제자는 앞으로 슬며시 몸을 내밀듯한 자연스런 자세로 묘사되었고 투명한 광배 뒤로 배경을 가득 채운 상서러운 구름이 내비치고 있다. 1724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단아한 얼굴과 담묵의 필치, 능숙한 필선, 섬세한 장시기과 색조 등 18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응진전 안에 있는 이 불화들은 응진전 안의 신앙적인 구도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보여 통일된 당내의 구도와 법설 제도를 알 수 있다. 또한 1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각 도상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16나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학술적ㆍ예술적 가치가 있다.
▶영산전 후불탱ㆍ팔상탱
송광사 영산전(보물)에 모셔져 있는 불화들로, 조선 영조 원년(1725)에 그려졌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린 후불탱과,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이다.
후불탱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일반적으로 석가후불화에서 보이는 불ㆍ보살과 제자 등의 교화성중 및 사천왕ㆍ팔부중 등 호법신들에 추가하여, 국왕과 대신같은 많은 청문성중을 비롯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사리불(舍利佛)까지 등장시켜 놓았다. 팔상탱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고, 영산회도와 마찬가지로 전반에 걸쳐 칙칙한 갈색 분위기의 무거운 느낌을 준다.
후불탱은 영산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후불화이면서도 다른 영산회도 및 기타 전각의 석가후불도와는 다르게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청중들과 사리불까지 배치시킴으로써 법화경 내용에 매우 충실한 대표적인 영산회도라는데 의의가 있다. 팔상도 또한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초기 팔상도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나무 표현기법과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티베트문 법지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는 티베트문 법지로, 송광사 16국사 중 제6세인 원감국사가 당시 충렬왕의 명을 받고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로부터 받아온 것이라 전해진다.
이 티베트문 법지는 현재 크고 작은 6장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색깔은 고르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황토색계의 밝은 황갈색이며 종이의 두께ㆍ색깔ㆍ필체 등으로 보아 본래는 1매의 문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광사 티베트문 법지는 고려시대 원나라와의 활발했던 불교교류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소조 사천왕상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흙으로 조성한 것으로 송광사 천왕문의 좌우에 2구씩 모두 4구가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상의 배열은 천왕문의 향 우측으로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과 검(劍)을 든 동방 지국천왕이, 향 좌측으로는 당(幢)을 든 서방 광목천왕과 용ㆍ여의주를 든 남방 증장천왕이 각각 시계방향 순서로 안치되어 있다.
대형의 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각 부의 비례가 어긋나지 않고 적당하며 부피감과 함께 사실적 기법이 돋보인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16세기 초반)과 완주 송광사 사천왕상(1649)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서방 광목천왕상의 지물 중 보탑 대신 새끼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어 학술적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크다 하겠다.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1628년(인조 6)에 다시 만들었다(重造)는 묵서명과 송광사사고(松廣寺史庫)ㆍ사지(寺誌) 등의 자료가 남아있어,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상을 1628년에 다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상 복장유물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의 전체적인 해체보수 과정에서 불복장 유물을 수습하였는데 그 결과 복장전적 12종 14책, 인본다라니 428장,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복장유물 중에서도 사천왕상 출토 복장전적은 고려시대 교장(敎藏)의 성격을 밝히는 새로운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복장전적은 대부분 교장(敎藏)의 중수본(重修本)에 해당되는데 그중 일부는 재조본 대장경과 사찰본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주관하여 당시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간행된 「교장(敎藏)」은 1000여종 가운데 국내외를 합쳐 모두 3종에 불과한 실정이며, 그 후 조선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중수한 책이 지금까지 송광사를 비롯하여 개인소장 등 대략 10종정도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송광사 사천왕상에서 발견된 교장 중수본은 무려 10종에 달하고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종수와 동일한 수량이 발견되었다.
사천왕상 복장전적은 그 동안 학계에서 간헐적으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등 불교문화사ㆍ서지학ㆍ인쇄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사천왕상 복장전적과 함께 출토된 인다라니경과 후령통 등도 불복장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ㆍ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전기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木心塑造)로 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되어 있던 저고리와 별도의 백색비단에 적은 발원문을 통해 1662년 궁중나인(宮中內人) 노예성(盧禮成)이 경안군(慶安君) 내외의 수명장원(壽命長遠)을 위해 발원하고, 경안군 내외와 나인 노예성, 박씨, 당대의 고승(高僧) 취미수초(翠微守初) 등이 시주하여 17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조각승 혜희(慧熙)와 금문(金文)이 조각하여 조성한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관음보살좌상은 1662년이라는 제작시기와 조성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한 미의식이 농후하게 반영된 가운데, 이 시기 불상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조각적 완성도를 보인다. 한편 강인한 인상에서 오는 높은 정신성, 장엄이 강조된 독특한 착의형식, 역동적인 힘이 강조된 신체의 형태미 등은 조각승 혜희의 유파적 특징이여서 17세기 본격화된 조각유파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발견된 복장유물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한편, 섬유류의 유물이 존속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기후․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 섬유류 유물은 복식사뿐만 아니라 직물, 염색, 민속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전적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順天松廣寺木造觀音菩薩坐像腹藏典籍)"은 위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 복장되어 있던 복장유물 중 중요 불교경전 8점이다.
이 경전 중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은 이권생(李權生), 박문손(朴文孫), 유약(柳約)등이 판하본을 쓰고, 전라도 광주목(全羅道光州牧)으로 하여금 판각, 간행하게 한 간경도감본 교장(敎藏)이다. 재조대장경은 해인사대장경(팔만대장경)의 15세기경의 인본(印本)으로 희귀한 자료이므로 복장유물 전체에서 독립하여 복장전적으로 별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보존 관리하여야 한다고 평가되었다.
▶송광사 사적과 명승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 법보, 승보) 중 하나인 승보사찰로서 유명한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어,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대찰로 중건된 후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곳이다.
경내에는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보 ‘송광사국사전’ 등 4점, 보물 27점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와 국사의 부도를 모신 암자가 위치하여 역사적·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
또한 조계산은 소백산맥 줄기의 끝 부분에 해당하며, 해발 889m의 높지 않은 산이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며, 산 전체가 넓은잎나무로 덮여 있어 철따라 계절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솟구친 절벽은 비룡폭포, 감초암폭포와 같은 명산의 경관도 지니고 있다.
선암사쪽은 나이가 수십년이 넘는 나무들로 차 있는데 도토리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등이 울창하게 있어 사계절 훌륭한 경관을 연출해 낸다. 그 중턱에는 대각국사 의천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와 선ㆍ교종의 중심사찰인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송광사와 선암사, 천년불심(天年佛心)길이 이어준 사찰(1)
'힐링 사찰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순 운주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57) (3) | 2023.07.27 |
---|---|
100대 명산 사찰, 덕유산과 백련사 (0) | 2023.07.23 |
순천(조계산) 송광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56)-1편 (0) | 2023.07.19 |
남양주 봉선사와 연꽃 축제(7월, 8월 서울 근교 당일치기) (0) | 2023.07.08 |
순천(조계산) 선암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55)-보물편2 (0) | 2023.07.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