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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한번은 가보고 싶은 명산(전남), 달마산과 미황사

by 3000포석정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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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달마산과 도솔암 전경, 월간 山>

 

달마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ㆍ북평면ㆍ송지면

-산높이 : 489m

 

선정이유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일어선 산이다. 현산면이 머리에 해당된다면 북평면은 등에, 송지면는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산의 줄기는 땅끝의 사자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마산 일대의 암석단애는 달마산 북서쪽에 위치한 바람재로부터 달마산-귀래봉(471m)-도솔봉(421m)에 걸쳐 나타나는데, 길이가 약 6~7㎞에 달한다.

 

암석단애를 구성하는 기반지질은 변성퇴적암류인 덕룡산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런 기반암으로 암석단애를 이룬 곳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하다. 산 능선부를 점하는 변성퇴적암 계통의 규암질 암석단애는 풍화와 침식에 강해 급경사의 암봉을 이루는데, 마치 공룡의 등줄기를 방불케 할 뿐만 아니라 암색 또한 흰 빛을 띠고 있어 수려하고도 기묘한 경관을 나타낸다.

 

달마산은 삼황(三黃)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상바위 그리고 석양빛 등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의 좌일산에서 서로 봉화를 주고받던 곳으로 현재 잔허만 남아 있다.

 

미황사에서 바라보이는 달마산 능선의 조망 경관은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고, 달마산 능선에서 부감되는 미황사의 전경과 남해 도서의 조망 경관 또한 이 일대의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달마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매우 아름답다.

 

 

 

달마산 등산코스

 

달마고도

미황사에서 출발하여 큰바람재와 노지랑골, 몰고리재 등을 지나며 달마산의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km의 둘레길입니다. 1300년 고찰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로, 중국 선종(禪宗)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이 상주한다는 믿음과 더불어 과거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복원한 길입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긴 수식을 달고 있는 달마고도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땀과 노력으로 만든 길이다. 1,0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옛길에는 철심과 말뚝, 밧줄이 난무했다. 금강스님은 달마대사의 법신이 모셔진 달마산이 이렇게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옛길을 이어 자연 친화적인 치유의 길로 만들었다.

 

250여 일 동안 날마다 40여 명의 인부가 지게와 손수레에 돌을 실어 날랐고 손과 삽으로 돌을 깔아 길을 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기계는 일절 쓰지 않았다. 산비탈을 깎아야 하는 구간에서도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옛길을 자연친화적으로 이은 달마고도는 미황사에서 출발해 큰바람재~노시랑골~몰고리재를 지나 미황사로 되돌아온다. 총 길이는 4개 코스에 17.7km이며 한 바퀴를 다 도는 데 6시간 정도 걸린다.

 

미황사 역사와 유래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어느 날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아래 포구에 닿았다. 배 안에서 범패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지만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스님들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이끌고 포구로 나갔다.

 

그러자 배가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聖衆), 16나한, 그리고 탱화, 금환(金環), 검은 돌들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불상과 경전을 모실 곳에 대해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왔다. 소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로 변했다.그날 밤 의조 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게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하는 것이었다.

 

의조 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했다. 의조 화상은 소가 처음 누던 자리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晩善)이 중건하였다.

 

 

 

미황사 주요 불교 문화유산

<해남 미황사 대웅전(좌), 응진당(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대웅전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1754)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ㆍ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응진당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에 타 버려, 지금있는 응진당은 영조 27년(1751)에 지은 것이다.

응진은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아라한ㆍ나한은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응진당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십육나한이나 오백나한을 모신다. 미황사 응진당에는 안쪽 벽면에 그림으로 십육나한을 모시고 있다. 앞면 3칸ㆍ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기둥 윗부분에는 장식이 조각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의 양식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남 미황사 괘불탱(우)과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괘불탱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하는데, 미황사 괘불탱은 화면 가득히 본존불을 배치하고, 아랫부분에 용왕과 용녀의 모습을 그렸다. 크기는 길이 1170㎝, 폭 486㎝로, 화면 가득히 본존불을 강조한 뒤, 아랫부분에 용왕과 용녀의 모습을 그렸다. 본존의 얼굴은 귀ㆍ눈ㆍ입ㆍ코 등이 작으며, 정수리 부분에 상투 모양의 육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윤곽선만 표현되었고,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안에 입은 옷은 가슴을 드러내어 허리부분에서 띠매듭을 묶었고, 옷은 격자무늬를 장식하여 18세기 후반기 그림에서 보이는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영조 3년(1727)에 탁행ㆍ설심ㆍ희심ㆍ임한ㆍ민휘ㆍ취상ㆍ명현 등이 그렸는데,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ㆍ분홍ㆍ황토색이 사용되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명승지)

달마산은 삼황(三黃)이라고 하는데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룬 것을 말하며, 바위병풍을 뒤로 두르고 서해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는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창건 이후 각종 역사 문화적 유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마산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는 풍치 절경의 산사이다.

도솔봉-달마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섬과 미황사, 달마산 일대의 수려한 경관, 산능선부에 풍화에 매우 강한 규암층이 길게 노출되면서 발달한 흰색의 수직 암봉들이 병풍같이 늘어서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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