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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적상산과 안국사

by 3000포석정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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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적상산 안렴대 전경, 월간 山>

 

적상산 소재지 및 높이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높이 : 1030.6m
 

100대 명산 선정이유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하다.
 

적상산 상세정보

천미터가 넘는, 낮지 않은 산 정상 일대가 평평한 특이지형이다. 서쪽 사면은 또 붉은 화강암 절벽이 띠를 둘러 예나 오늘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옛날에는 거기 산성을 쌓고 왕조실록을 두었으며 오늘은 양수발전소 윗저수지를 만들어 원자력발전소 하나 만큼의 전기를 생산한다(사실은 그 하나가 멈췄을 경우를 대비한 예비용이다).
 
상봉 기봉과 북쪽의 향로봉이 밋밋하게 이어져 봉만미는 없다. 장군바위, 장도바위 등의 기암에다 천일폭포, 송대폭포가 있지만 계류미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산 위의 절 안국사는 또 저수지를 만들면서 자리를 옮겨 볼만한 구석이 없다. 윗저수지가 있는 까닭에 정상부까지 포장도로는 잘 나있다. 그래 거기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 덕유산 바라보기는 좋다.
 
가을 단풍이 여인의 붉은 치마 같아 '붉을 적'자, '치마 상'자 적상산이라고 했다는데 소가 하품할 소리다. 가을에 붉지 않은 산이 어디 있으며 가을 아닌 계절에는 그럼 뭐라 불러야한단 말인가? 치마바위가 있어 상산으로 불렸는데 두 자로 불안해 앞에 '적'자를 덧붙였다는 게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호)이 있다.
 
이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건설된 것이라 한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년(1628년)에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있어 이 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운치를 더해 준다. 한편 고려 충렬왕 3년(1227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국사 및 조선시대 인조 21년(1643년)에 창건한 호국사도 있다.
 

 

 

적상산 등산코스

여인의 치마폭 처럼 아름다운 적상산은 가을철 대표 탐방코스

 
서창코스

서창공원지킴터에서 시작하여 향로봉과 안국사로 향하는 탐방코스(편도 3.8km, 2시간)
한국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운 탐방코스
적상산성과 안국사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탐방코스
 
적상산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적상산사고가 있었으며, 서창공원지킴터에서 서문을 거쳐 적상산을 탐방하는 것이 쉬운 탐방코스이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싸인 바위산으로, 병품처럼 둘러쳐진 바위와 가을 단풍이 마치 여인의 치마폭처럼 아름답다 하여 붉을적(赤) 치마상(裳)을 써서 적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서창공원지킴터~향로봉삼거리 구간(2.8km, 1시간 30분)
서창~향로봉삼거리 코스는 2.8km,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서창코스는 가족과 함께 탐방할 수 있는 보통코스로 경사가 완만하며 흙길과 계단으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서창공원지킴터에서 약 1시간 정도 오르면 최영장군이 말을 타고 가다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칼로 베고 지나갔다는 장도바위를 만날 수 있다. 장도바위를 지나 적상산성 서문까지는 오르막이고 서문부터 완만하다. 향로봉삼거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안국사를 탐방할 수 있고, 좌측으로 가면 향로봉을 탐방할 수 있다.
 
서문삼거리~안국사 구간(1.0km, 30분)
이후 바로 능선이 만나는 지점인 향로봉삼거리가 나오고 길이 갈라지는데 좌측으로는 향로봉, 우측으로는 안국사로 향하는 코스로 이어진다. 향로봉삼거리에서 안국사방면으로 1km를 가면, 안국사삼거리가 나오며 좌측으로 안국사보이고, 우측으로는 안렴대로 향하는 코스이다. 가을철 단풍으로도 유명한 서창코스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적상산성과 안국사 등을 함께 볼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탐방코스이다.
 

 

 

안국사 이전 배경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사찰인 안국사를 가려면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한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르다보면 산중에 큰 호수 하나가 나타난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적상호이다. 분지 지형 적상산에 높이 60m 길이 287m의 댐을 세우고 물을 가두었다. 이 호수는 여느 호수처럼 상수원이거나 농업용이 아니다. 1992년 8월부터 2년 2개월에 걸쳐 완공한 양수발전 시설이다. 이런 용도로는 청평ㆍ삼랑진과 함께 국내에 세 곳뿐이다.
 
양수발전소 건설로 창건 후 최대 위기가 왔다. 안국사와 적상산 사고는 원래 적상호 안에 있었다. 수직 절벽을 이용한 양수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면서 안국사는 수몰 위기에 처한다.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사찰 이름처럼 이 땅의 명운과 함께해 온 사찰이 사라지는 것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팔짱 끼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안국사 주지였던 원행圓行스님(현 조계종 총무원장)은 사찰을 옮겨갈 땅을 물색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는 노력과 함께 한국전력을 상대로 길고 긴 설득작업을 시작했다. 절 이전에 대해 난색을 보이던 한전은 스님과 신도들의 설득으로 이전에 동의했다. 평지로 내려가면 모든 게 쉬웠다. 그러나 호국사찰이자 무학대사가 점지한 '국중제일사찰'이란 서원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지금의 안국사 자리이다. 1993년 적성산성 안에 있던 호국사 터로 절을 옮긴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 당우를 짓고 가람을 정비해 이 땅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도량으로 재탄생했다.
 

안국사 역사와 유래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ㆍ선원ㆍ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ㆍ천불전ㆍ요사ㆍ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안국사 불교 문화유산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산회 괘불탱(보물)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인데,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08m, 폭 7.31m 크기의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 문수, 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는 아미타불, 관음,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데 이목구비는 큼직큼직하며 건장하고 각진어깨, 노출된 가슴,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아 보이는 하체를 지녔으며 이렇게 크고 건장한 신체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다. 녹색과 주황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회색, 분홍 등 중간색을 넣어 은은한 분위기를 나타내며 구름, 연꽃, 단청문양 등으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의겸 등 여러 승려 화가들이 그린 이 그림은 본존불을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조선 정조 16년(1792), 순조 9년(1809)에 뒷벽을 새단장한 기록이 있어 승려화가인 의겸이 활약한 영조 6년(1730)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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