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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천성산과 내원사

by 3000포석정 202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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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천성산, 월간 山>

 

천성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상북면, 웅상읍

-산높이 : 920.2m

 

100대 명산 선정이유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고, 특히 산정상부에 드넓은 초원과 산지습지가 발달하여 끈끈이주걱 등 희귀식물과 수서곤충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선정,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가을에는 능선의 억새가 장관을 이루며,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원사가 있음

 

천성산 상세정보

"가파른 연봉들 첩첩이요 깊고 깊은 골짜기 굴 같다(連峰疊  洞府深邃)"는 산이다. 웅상쪽에서 보면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단순ㆍ웅장한 홑산인데 양산쪽으로는 힘찬 산줄기를 여럿 뻗어내리면서 그 위에 수많은 암봉을 올려놓았다. 능선들 사이 골짜기들은 암반계류 담소(潭沼)가 즐비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저 표현이 하나도 어긋남 없는, 봉만미와 계류미가 다 같이 뛰어난 명산인 것이다.

 

예전 지도에 "천성산"이 붙어있었던 북봉(약 830m) 일대는 또 억새의 천국이다. 그 천국 여기저기 벌여있는 고층습원에는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꼬리치레도롱뇽과 끈끈이주걱 같은 희귀 동식물이 산다. T자 모양으로 흐르는 특이지형 법수계곡 상류의 이색지대다.

 

<천성산 화엄늪, 월간 山>

 

이땅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이름나 있다. 그런 만큼 조망이 뛰어나 영남알프스 아홉 준봉이 하나하나 또렷또렷 보이고 남으로 부산 금정산은 물론이려니와 멀리 김해 신어산, 마산 무학산까지 두루두루 가늠할 수 있다.

 

천성산이라고 불리게된 인연은 원효대사가 이 산으로 천 명의 중생을 입산시켜 모두 성인이 되게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밥상을 던져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해 찾아온 당나라 승려들이라는 설도 있는데 당나라를 가지도 않은 원효대사를 가지고 너무 장난을 친 듯하다. 상봉은 최근까지 원효산이라고 했다.

 

통도사 인터체인지에서 부산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으로, 경부고속도로 위로 가설된 용연 육교를 지나 3km쯤 가면 내원사로 가는 골짜기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우거져 금강산의 계곡을 방불케하는 천성산이 시작된다.

 

 

 

천성산 등산코스

등산코스(11.8km, 6시간 30분)

숲속제1주차장~내원사~천성산2봉(비로봉)~은수고객~천성산(원효봉)~화엄벌~숲속제1주차장

 

천성산 등산로는 다양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또 낙동정맥의 주요 능선으로 낙동정맥 종주꾼들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산이다. 일반적으로 천성산 정상 원효봉 접근은 입장료 2,000원과 승용차 주차비 2,000원을 내는 내원사에서 시작한다. 내원사에서 천성산2봉까지 불과 2.5㎞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천성산 정상 8부 능선에 있는 원효암은 원효가 수행한 암자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서 정상 접근이 가능하다.

 

천성산 서쪽 자락 홍룡폭포가 있는 홍룡사에서도 많이 접근한다. 홍룡사도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전한다. 그런데 홍룡사는 관음성지로 통한다. 관음성지는 의상과 관련 있다. 원래 원효와 의상이 함께 중국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원효는 밤에 맛있게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뒤 유학을 포기한다. 반면 의상은 유학하여 중국 태화사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부처의 사리와 유물을 받아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관음성지와 적멸보궁은 의상과 관련이 있다.

 

100대 명산 대찰(名山 大刹) 이야기 - 종합

 

내원사 역사와 유래

내원사는 통도사의 말사로써 수려한 산수와 6Km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 2의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1300여년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성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다. 1898년 석담유성(石潭有性)선사가 설우(雪牛), 퇴운(退雲), 완해(玩海)등과 더불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절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써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께서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 향곡선사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을 잇는 명안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비구니 수옥스님의 원력으로 10년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되었다. 그 후 만공스님의 법제자인 법희, 선경스님등 납자들의 정진처가 되었다. 19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여섯 번째 회향을 하였고 지금도 매 안거마다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내원사 창건설화

창건설화는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하여 지는데 당시 동래 척판암에 주석하시던 원효성사께서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終南山 雲際寺)에 수도하던 천명대중이 뒷산이 무너져 위급한 사고를 당할것을 미리 아시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판자에 써서 운제사 상공에 날아다니게 했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자를 보고 놀라 일주문 밖으로 나온 순간에 산사태가 나서 절은 무너져 버리고 대중은 모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 후, 구출된 천명의 대중은 도를 구하여 성사를 찾아왔으므로 성사는 그들을 데리고 머물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중방리(지금의 용연리)를 지날적에 원적산(圓寂山) 산신령이 마중 나와 "이 산에 천명이 득도할 곳이니 청컨데 이 곳으로 들어와 머무소서" 하니 성사는 산신령이 인도하는 바를 따라 지금의 산령각 입구 까지 온 즉 원적산 산신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산령각을 짓게되어서 유독 내원사 산령각은 큰절에서 5리 밖에 떨어져 있게 되었다.성사께서 왼쪽 계곡을 따라 들어와서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 중, 하 내원암과 아울러 89개의 암자를 창건하시어 천명의 대중을 머물러 수도케 하였다.

 

그리고 대중을 산 상봉에 모이게 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므로 지금도 그곳을 화엄벌이라 하며, 988명이 이 산에서 득도하였고 나머지 12인중 8명은 팔공산(八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으로 가서 도를 깨달았다하여 이후로 원적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창건 후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하는 바가 없다.

 

내원사 불교 문화유산

▶청동북(보물)

쇠북, 즉 금고(金鼓)란 글자의 뜻 그대로 청동으로 만든 북으로서 금구(禁口), 또는 반자(飯子, 半子) 등으로 불리는 절에서 쓰인 의식법구의 하나이다. 범종이 주로 아침ㆍ저녁의 예불이나 중요한 의식법회 때 사용된 것과 비교해 볼 때 금고는 공양시간을 알린다거나 사람을 모으는 등 그보다 단순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통도사에 소장된 내원사 금고는 뒷면이 넓게 뚫려 공명구가 형성된 일반적인 형식의 반자형 금고이다. 고면은 아직까지 두줄의 융기동심원으로 나누어 내구는 소문의 당좌를 그리고 그 외연에는 팔엽의 연화문을 변형시킨 화문을 섬세하게 장식되었다. 가장 바깥인 외구에는 네 곳을 돌아가며 유려한 운문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운문은 동아대박물관 소장의 대안원년명(大安元年銘(1085)) 반자의 운문보다는 훨씬 율동적이면서 도안화된 느낌이다.

특히, 고면의 구획이 아직까지 2구로 간략히 세분되었고 경암사 반자의 운문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11세기의 마지막 편년작품이면서도 섬세하고 유려한 문양이 잘 표현된 고려 금고 가운데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고면의 문양이 섬세한 수작인 동시에 손상 없는 명문은 고려 금고 연구의 귀중한 편년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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