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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영동(천태산) 영국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12)

by 3000포석정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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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영국사 역사와 유래

천태산은 지륵산(智勒山) 또는 천주산(天柱山)이라고도 한다. 527년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문종 때 의천(義天)이 중창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 산 이름을 천주산이라 하였다. 뒤에 다시 공민왕에 의하여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건너서 개경까지 육박하자, 왕은 이 절로 피난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는 한편, 이원(伊院) 마니산성에 근위병을 포진하여 놓았다. 이 절의 맞은편에는 팽이를 깎아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데, 왕은 그 봉우리 위에 왕비를 기거하도록 해놓고 옥새를 맡겨두었다. 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평군민안(平君民安)이 되었으니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라 하고 현판을 써준 뒤 떠났다 한다.

 

영국사가 위치한 천태산(해발 715m)은 100대 명산 중의 하나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암릉 산행지로 유명하여 등산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 영국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영동 영국사 승탑 고려시대
보물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통일신라
보물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고려시대
보물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고려시대

<영국사 승탑(좌)과 삼층석탑(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국사 원각국사비(좌)와 망탑봉 삼층석탑(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국사 승탑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승탑,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다.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가 후에 다시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승탑은 영국사 안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부ㆍ탑신부ㆍ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승탑이 세워진 연도는 절 안의 원각국사비와 연관 지어볼 때 고려 명종 10년(118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국사 삼층석탑

이 탑은 영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완전한 형태이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 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되던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영국사 원각국사비

영국사 경내에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ㆍ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 되는 곳의 망탑봉(望塔峰)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을 기단(基壇)으로 삼고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암석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중앙에 돌출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단은 기둥모양과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형태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 아무런 받침없이 그대로 탑신이 놓여있다. 탑신은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좁아지는 몸돌을 쌓아 올렸다.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일정하지 않지만, 몸돌의 상부를 좁게 함으로써 비교적 안정감이 있다. 기단을 한 층으로 하고 기단의 맨 윗돌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된 고려석탑의 유형을 보여준다. 각 부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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