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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영천(팔공산) 은해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25)

by 3000포석정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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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은해사 역사와 유래

천년 고찰 팔공산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 (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은해사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산지가람처럼 단탑단금당식(單塔單金堂式)으로 가람배치가 되어있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은해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 조선시대
보물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조선시대
보물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조선시대
보물 은해사 괘불탱 조선시대
보물 영천 은해사 청동북 및 북걸이 조선시대
보물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조선시대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좌), 금동보살좌상(가운데), 백흥암 극락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백흥암 수미단

수미단이란 상상의 산인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 불단를 말한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永川 銀海寺 百興庵 須彌壇)은 극락전에 있는 높이 125㎝, 너비 413㎝의 조선 후기에 만든 불단이다. 앞쪽 면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도 5등분 되어 각각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장 위에 있는 단은 안상문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제2단은 봉황ㆍ공작ㆍ학ㆍ꿩 등을, 제3단은 용ㆍ어린아이ㆍ물고기ㆍ개구리 등을 매우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제4단은 꽃잎 속에 있는 코끼리ㆍ사자ㆍ사슴 등을 조각하였고, 가장 아래단의 양쪽 끝에는 도깨비 얼굴을, 가운데 부분에는 용을 조각하였다. 각 단에 있는 새나 동물의 배열이 특색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하다. 이런 특징이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더러 남아 있지만, 이 불단은 그 중에서도 대표되는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永川 銀海寺 雲浮庵 金銅菩薩坐像)은 신라 헌덕왕 1년(809)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은해사의 운부암에 모셔진 보살상으로 불꽃무늬ㆍ꽃무늬ㆍ극락조(極樂鳥)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는 높이 1.02m의 아담한 작품이다. 얼굴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갸름한 형태이며, 온 몸을 휘감은 구슬장식이 무척 화려한 모습이다. 신체 표현은 굴곡 없이 수평적이어서 형식적으로 처리된 느낌이지만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런 표현은 영덕 장육사 건칠보살좌상(보물), 대승사 금동보살좌상(보물)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방적인 특색이 엿보인다. 목에 있는 띠 주름식의 삼도(三道), 가슴 아래 띠로 묶은 매듭 표현, 양 다리에 대칭적으로 흘러내린 옷주름 등은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 후기 경상북도 지역의 지방색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보살상으로 볼 수 있다.

 

▶백흥암 극락전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암자로 신라말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조선 명종 1년(1546) 인종의 태실(胎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백흥암을 수호사찰로 정하고 크게 고쳤다고 한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인조 21년(1643)에 지은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재료의 형태와 짜임이 조선시대의 옛 수법을 잘 갖추고 있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를 높이고 주변을 낮게 만들어 층을 이루게 꾸몄으며, 불상을 올린 불단(수미단)은 조각이 매우 특이하고 우수하여 보물로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으로 지정되어 있다.

 

<괘불탱(좌), 청동북 및 북걸이(가운데), 염불왕생첩경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괘불탱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이 열릴 때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교그림를 말하는데, 이 불화는 거대한 화면에 불을 단독으로 그린 형식으로 비단바탕에 채색되었다. 이 괘불의 불(佛) 좌우로 대칭되게 장식을 넣어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화면을 조화롭게 나타내었다. 녹색의 머리광배에 붉은색의 옷을 입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어깨선 또한 둥글게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화면 윗부분의 양쪽에는 새와 덮개 장식이 있고 중앙부의 양쪽으로는 모란이 배치되어 있어 불세계의 평화스러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황토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필치가 매우 정밀하면서도 세련되어 활기찬 인상을 준다. 영조 26년(1750)에 제작된 이 괘불은 연꽃이 활짝 피어난 연못으로부터 천상세계로의 상승을 나타낸 상징적인 화면구성을 하고 있으며 원만한 형태, 세련된 필선, 적절한 색의 조화 등이 매우 돋보이는 18세기 불화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청동북 및 북걸이

쇠북이란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의식을 행할때 사용하는 청동으로 만든 소리내는 도구이다. 금고, 금구, 또는 반자라고도 불린다. 이 금고는 조선 후기에 많이 쓰였던 재질인 청동으로 되어 있고, 크기는 직경 77.2㎝, 두께 12.7㎝로 큰 편이다. 표면의 공간은 큰 동심원을 그린 다음, 금고를 두드리는 자리인 당좌의 원과 안쪽 원, 바깥쪽 원으로 나누었다. 당좌는 3중의 연꽃무늬를 돋을 새김하였고, 안쪽 원에는 봉황무늬 3개와 구름무늬 3개를 배치하였다. 바깥쪽 원에는 연꽃무늬 5개와 이중의 연꽃무늬 5개를 교대로 배치하여 장식하였다. 측면에는 금고를 매달 수 있도록 위쪽과 옆구리에 3개의 고리를 달았으며, 뒷면에 만든 시기를 적은 글이 있다. 문양의 표현은 고려시대 금고에 비해 앞면의 문양이 더 도드라지고 자연스럽다. 금고 뒷면에 새긴 명문을 통해 164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고, 무늬의 각종 표현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금고의 문양을 연결해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금고를 거는 금고리 역시 금고와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파악되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염불왕생첩경도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을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과 이를 맞이하는 아미타불 일행, 극락연지(極樂蓮池)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하는 왕생자, 보수(寶樹)와 극락조(極樂鳥) 등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이다. 원래 은해사 심검당에 구장(舊藏)되었던 것으로 도난 되었다가 최근 회수되었는데, 현재 화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도난 이전 조사 시에 건륭(乾隆)15년이라는 연대가 남아 있던 것이 확인되어 1750년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극락왕생의 모습을 직접 그린 불화가 약 20여 점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조선후기 극락왕생도 중 가장 이른 예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서 어두운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채색이 잘 남아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보수:극락정토에 일곱 줄로 벌여 서 있는 보물 나무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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