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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포항(내연산) 보경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32)

by 3000포석정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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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경사 역사와 유래

지명법사는진나라(중국 낙양)에서 유학하면서 백마사에서 모셔온 8면경에 대한 이야기를 왕에게 자세히 고하고 큰 불사 원력을 밝혔다. 왕은 지명 법사 10만리 만경창파를 헤치고 보경을 모셔온 호법인연으로 대작불사 의지를 삼보전에 아뢰고 신하들을 대동해 해맞이(영일) 고을로 출발하였다. 일행이 명당을 찾고 있을 때 지명 법사가 하늘을 쳐다보니 5색구름이 있었는데 이 구름을 따라 동해안을 거슬러 내연산에 도착했다. 1만2천봉에 12폭포가 절정을 이루고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제히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8면 보경을 봉안한후 대가람을 완성했는데 이 절이 바로 보경사이다.

 

보경사 창건연기설화

진평왕 25년에 왕이 신하들과 지명법사를 거느리고 동해안을 순행(巡幸)하다가 해아현(海阿縣)에 이르러 산정에 오색구름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산 아래 이르자 큰못이 있었다. 지명법사가 그 못이 불법이 불멸할 명당이라고 아뢰자 왕은 그못을 매우고 지명법사가 진 나라에서 구해온 팔면보경을 그 못 가운데에 묻고 금당을 세웠는데 이를 보경사라 이름하였다. 그 뒤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오암대사 등 많은 호국 승장과 고승들이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경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사인비구 제작 동종-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조선시대
보물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고려시대
보물 포항 보경사 승탑 고려시대
보물 포항 보경사 괘불탱 조선시대
보물 포항 보경사 적광전 조선시대
보물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조선시대
명승 포항 보경사 내연산 폭포  

 

<보경사 서운암 동종(좌), 원진국사비(가운데), 승탑(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인비구 제작 동종-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지닌 형태를 합해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시기가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다. 이 띠 아래로는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연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眞言)을 새긴 점이 이 종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범종의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후기 종과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진국사비

보경사에 있는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승탑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단부(基壇部)의 아래ㆍ중간ㆍ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보경사 괘불탱(좌), 적광전(가운데), 비로자나불도(우)>

 

▶괘불탱

보경사 괘불탱은 1708년(숙종 34)에 조성되었지만, 17년 뒤인 1725년(영조 원년)에 중수하였다. 이 괘불탱은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의균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대형의 화폭에 단독의 존상만을 그린 구성은 매우 단순하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계열의 색만을 이용해 조화와 대비를 훌륭하게 처리하였고, 여래가 입고 있는 가사의 조(條)에 금 바탕에 녹색으로 문양을 내는 장식이나 끝단의 세부 문양 등 세부장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보경사 괘불탱같이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 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적광전

보경사는 신라 25년(602)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보경사에 위치한 적광전은 사명대사가 1588년에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 에 의하면 603년(신라 진평왕 25)에 창건된 뒤 1214년(고려 고종 원년)에 원진국사가 중창하고, 1677년(숙종 3)에 삼창한 불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한반도의 불교전래 역사를 볼 때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평면에 다포 맞배지붕이며,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전면 중심칸에는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이 결구되어 있는데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데 비해 사자상의 조각이 정교하고 국내의 사례가 적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적광전은 구조적으로나 의장적으로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조선중기의 특징적인 건축수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비로자나불도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1742년(영조 18) 뇌현(雷現), 밀기(密機), 석잠(碩岑) 등 조선 후기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높이와 좌우 폭 모두 3미터에 가까운 대형 삼베 바탕에 붉은 안료를 칠한 뒤 인물과 의복 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선묘불화(線描佛畫)이다. 특히 왕실의 금선묘(金線描) 불화에 비해 민중불화의 일종인 삼베 바탕 선묘불화는 18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중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가 대표적 작품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문수․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 권속(眷屬)들이 둥글게 에워싼 원형 구도로서, 이렇듯 비로자나불을 주존불(主尊佛)로 배치한 불화 중에는 이 작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 붉은 바탕과 백색의 선묘, 섬세한 필선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장식 문양 등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오묘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뚜렷하여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 도상 및 선묘불화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연산폭포 고서화(좌)와 내연산 관음폭포(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내연산 폭포

-내연산 계곡은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계곡' 청하골에 폭포들이 연이어 있고 하늘이 조금 열린 골짜기의 맑은 물과 웅장한 기암이 우수함

-깊은 계곡에서 낙차가 큰 폭포의 경관적 특징이 두드러지며, 사계절 풍부한 폭포수가 굽이쳐 많은 용소(龍沼)를 만들며 시원한 감흥을 줌

-상생폭포부터 연산폭포까지의 경관이 빼어나며 특히 연산폭포(내연폭포)는 여름철의 우렁찬 소리와 겨울철 얼음기둥이 웅장한 위용임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의 내연산, 삼용추(三龍湫) 기록과 황여일(1556~1622)의 유람록,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 '내연산폭포도', '내연삼용추도' 등 많은 시ㆍ서ㆍ화(詩ㆍ書ㆍ畫)를 통하여 폭포의 아름다움을 향유하여온 역사문화적 가치 또한 훌륭함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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