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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경주 기림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31)

by 3000포석정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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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무료 기념해서 특집으로 전국 65개 사찰들에 대해 사찰의 역사와 해당 사찰에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지 글을 연재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림사 역사와 유래

기림사는 기원 년 전후 인도의 정토신앙이 성행하던 시절 신라의 바닷길인 해양 실크로드(당시 허황옥과 장유화상 등이 김해 지역을 방문하여 그 흔적을 남긴 기록이 있으며 훗날 구법승 혜초 스님도 이 길을 통해 천축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지음)를 통해 전래된 인도 정토신앙을 토대로 옛 신라인의 이상향인 이 땅에 안락국의 세계를 구현 하고자 하였던 염원이 깃든 도량이다.

 

당시 인도 범마라국의 광유성인에 의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국 위에 임정사(林井寺)라 이름하여 개산(開山)하고 급수봉다(汲水奉茶)와 급수양화(汲水養花)의 게송으로 수행하니 훗날 신라 향가의 정신적 뿌리가 되며 한국 최초의 차 문화가 여실히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곳이다.

 

<경주 기림사 헌다벽화, 기림사 홈페이지 참조>

 

또 본사 약사전 헌다벽화(獻茶璧畵)는 국내 유일의 가장 오래된 헌다벽화로써 희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도량의 역사가 차와 함께 시발하였음을 증명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후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원효스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머무셨던 기원정상의 의미인 기(祇)자와 옛 임정사의 임(林)을 더해 기림사(祇林寺)라 이름 개창(開創)한 원효의 일심 정토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급수봉다(汲水奉茶) : 오종수(五種水)를 길어 부처님께 차를 다려 공양함

*급수양화(汲水養花) : 오종수(五種水)를 길어 오색화를 키워 냄

*한국 차문화의 성지 : 남일지(南一枝) 북수종(北水鐘), 해남 대흥사 일지암과 남양주 수종사

 

 

기림사 문화유산

종목 명칭 시대명
보물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조선시대
보물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조선시대
보물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물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보물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삼불회도 조선시대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좌)과 대적광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건칠보살반가상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慶州 祇林寺 乾漆菩薩半跏像)는 경상북도 월성군 양북면의 기림사에 모셔진 조선시대 건칠보살좌상이다. 건칠불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든 뒤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바른 다음 속을 빼낸 불상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는 예가 매우 적어 이 불상의 가치가 더욱 크다.

 

가슴 부분에 있는 독특한 띠매듭은 조선시대에 나무로 만든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왼손은 대좌(臺座)를 짚고 다리는 대좌 아래에 내린 반가좌(半跏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로 보아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전반적으로 얼굴 모습이나 체구는 당당한 편이나 손과 발이 작게 만들어져 비례감이 떨어진다. 보살상의 대좌에 홍치(弘治) 14년(연산군 7년, 1501)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유례가 드문 건칠불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적광전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인도의 스님 광유가 세워 임정사라 불렀고, 그 뒤 원효대사가 새롭게 고쳐 지어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절은 천년에 한번 핀다는 한약초 '우담바라'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한 곳이다.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법당을 가리킨다. 선덕여왕 때 세워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한 것으로 지금 건물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크게 고쳤을 때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앞면 5칸ㆍ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겉모습은 절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힘차며 안쪽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정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공포에 조각을 많이 넣어 17세기 건축 흐름을 알 수 있고, 특히 수리를 할 때 옛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아 중요한 건축사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좌), 복장전적(가운데), 비로자나삼불회도(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기림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불상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향나무로 틀을 만든 뒤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만든 것이다.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약사(藥師)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협시로 배치한 형태이다. 근엄하면서도 정제된 얼굴, 양감이 풍부하지 않은 신체의 표현, 배부분의 띠로 묶은 옷 등에서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의 전적 유물은 고려시대 조성되었던 은자대장경(銀字大藏經)의 실례를 보여주며, 고려시기 판각(板刻)되었던 목판의 인출과 다양한 장정(裝訂)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사경과 여러 목판본에서 확인되는 조성 목적과 조성 시기와 장소 그리고 관여했던 인물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조성 당시의 역사상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비로자나삼불회도

이 불화는 기림사 대적광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삼불회도로서, 중앙에 비로자나불회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불회도, 오른쪽에 아미타불회도가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많이 조성된 삼불회도는 석가모니불화(중앙)·약사불화(좌)·아미타불화(우)로 구성된 삼세불화와 비로자나불화(중앙)ㆍ노사나불화(좌)ㆍ석가모니불화(우)로 구성된 삼신불화가 일반적이지만 이 불화에서는 비로자나불화와 아미타불화, 약사불화로 이루어져 있어 삼세불화와 삼신불화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중국 남송대부터 나타난 형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등 16세기 불상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지만, 불화 중에서 기림사 불화가 가장 이른 시기의 예에 속하기 때문에 자료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 불화는 천오(天悟)ㆍ금명(錦明)ㆍ최훈(最熏)ㆍ적조(寂照)ㆍ지순(智淳)ㆍ조한(祖閑)ㆍ임한(任閑) 등의 화원이 참여하여 1718년(숙종 44)에 그렸는데, 천오와 임한은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화승들로 기림사 불화의 진가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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