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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명성산과 자인사

by 3000포석정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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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명성산 억새밭군락지, 월간 山 참조>

 

명성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ㆍ이동면
-산높이 : 922m
 

100대 명산 선정이유

도평천(都坪川), 영평천(永平川), 한탄강의 수계를 이루며, 산세가 가파르고 곳곳에 바위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산 북쪽으로 삼부연폭포와 남쪽으로 산정호수를 끼고 있음. 전설에 의하면 왕건(王建)에게 쫓기던 궁예(弓裔)가 피살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명성산 상세정보

명성산 산자락에 걸쳐있는 산정호수와 더불어 명승지로서 유명하다. '울음산'을 뜻하는 명성산(鳴聲山)이란 이름은 궁예가 자신의 부하였던 고려 태조 왕건에서 패한 후 이곳으로 피신와 크게 울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명성산 산자락에는 궁예봉을 비롯해 궁예가 도망쳤다는 패주골, 왕건의 군사가 쫓아오는 것을 살피던 곳이라 하려 이름 붙여진 망무봉 등, 명성산 곳곳에는 궁예의 전설이 아직 남아 있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에 걸쳐 빚어진 명성산은 궁예왕굴을 비롯하여 자인사, 책바위, 등룡폭포 등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특히 정상과 연결된 능선은 억새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포천시에서는 매년 10월 둘째주 토, 일 양일간 억새축제를 열고 있다. 
 
명성산은 서울에서 동북으로 84Km, 운천에서 약 4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등산과 호수의 정취를 만끽 할 수 있는 산이다. 일명 '울음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슬픔으로 이 산에서 통곡을 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산도 알았을까. 그런 연유로 '울 명' '소리 성'자를 붙여 명성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전체가 암벽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당당하고 가파르며 가을이면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다. 암릉과 암벽이 같이 형성된 산이라서 사시사철 다양한 풍경을 연출해 등산객들로 하여금 철따라 다른 느낌을 느끼게 해 준다. 정상은 민등봉이나 전망이 매우 좋으며, 남쪽으로 이어진 12봉 능선의 모습이 장쾌하다. 능선에서 우거진 억새풀밭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에 지루한 줄 모르고 걷게 된다.
 

명성산 등산코스

 

 
명성산 코스
1코스 : 상동주차장~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군락지~팔각정~삼각봉~명성산 정상(7.5km, 4시간 30분 소요)
이 코스는 명성산에서 등산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이다. 들머리인 상동주차장 종점에서 바로 등산이 시작된다. 등룡폭포~억새군락~주능선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산길 전체에 위험요소가 없다. 완만한 길로만 이어진다. 그래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이 코스에서는 연인들을 비롯해 베이비 캐리어에 아기를 등짐 진 젊은 부부 모습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2코스 : 상동주차장~비선폭포~책박위 암릉~자인사 갈림길~팔각정~삼각봉~정상(6.6km. 4시간 30분 소요)
이 코스는 명성산에서 궁예능선과 비교가 될 만큼 스릴감 넘치는 암릉코스이다. 상동주차장 종점에서 7~8분 거리인 비선폭포에 이르면 푯말(책바위 팔각정 2.2km, 억새밭 팔각정 3.5km)이 나온다. 푯말에서 왼쪽 들머리로 발길을 옮겨 20분 오르면 순흥안씨묘(順興 安氏墓)를 지나간다. 묘를 뒤로하고 13분이면 쉼터(팔각정 1.5km 푯말)에 닿는다.
쉼터 이후 약 30m 길이 난간밧줄을 지나 5분 거리에 이르면 '명성산 등산 안내도'가 나온다. 등산 안내도에서 2번째 약 30m 길이 밧줄 상단부에 이르면 기둥형 푯말과 마주친다. 기둥형 푯말에서 오른쪽 약 10m 이동하면 본격적인 급경사 오르막 데크 계단길이 시작된다. 급경사 바위면 위로 오른쪽~왼쪽~오른쪽~왼쪽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을 5분 오르면 데크 상단부 전망데크 안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수상분수를 뿜어내는 산정호수와 상동주차장이 궁예가 망을 보았다는 망봉산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약 80m 길이로 어지는 밧줄지대를 올라서면 바윗길이 오른쪽으로 꺾인다. 오른쪽 바윗길로 들어서면 곧이어 V자로 패인 바위에 걸쳐진 10m 길이 난간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가면 암릉 길은 왼쪽 급경사 데크 계단으로 이어진다. 약 50m 길이는 됨직한 데크 계단 상단부에 오르면 U자형으로 패인 바위 협곡(등산용어로 쿨와르) 안으로 들어선다. 울퉁불퉁한 너덜을 이룬 바위 협곡 사이로 약 40m 오르면 책바위 암릉 상단부 작은 안부(억새밭 팔각정 1km, 비선폭포 1.2km 푯말)에 닿는다. 이후 20분 거리 자인사 갈림길 안부를 지나 팔각정으로 향하면 된다.
 

 

 
3코스 : 산안고개~숨은폭포계곡~궁예봉 갈림길~정상 남릉 안부~정상(상동주차장 기점 약 6.5km, 3시간 30분 소요, 산안고개 기점 약 3km, 2시간 소요)
산안고개는 철원군 강포 3교에서 잰걸음으로 35분(약 2.5km), 포천시 상동주차장에서 잰걸음으로 50분(약 3.5km) 안팎이 소요된다. 산안고개는 강원도 철원군 강포리와 경기도 포천시 산정리 경계선이다.
10여 년 전 산안고개 동쪽 숨은폭포계곡 들머리에는 푯말(명성산 3km)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푯말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철원군과 포천시 양쪽 어디에서도 등산인들을 위한 등산안내도나 이정표 역할을 하는 푯말을 설치해 놓지 않았다. 그 대신 숨은폭포계곡 들머리에는 각 산악회에서 다녀간 흔적으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수 십 개에 달하는 표지기들이 산행 들머리 푯말을 대신하고 있다.
숨은폭포 하단부 '현위치 4-4' 푯말이 있는 합수점에서는 오른쪽 계곡 길을 이용해 숨은폭포 상단부로 가는 길이 안전하다. 합수점에서 왼쪽으로 직진하는 길은 폭포 오른쪽으로 직등하는 길이다. 예전에는 이 직등 길로 많이 다녔으나 중간 10m 높이 절벽 트래버스(횡단) 지점이 위험하다. 초심자는 직등 길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자인사 역사

자인사는 역사가 오래된 사찰은 아니다. 사적비에 따르면 자인사는 김해공(金海空)스님이 서울 명륜동에 창건한 절을 1964년 현재 자리로 이건(移建)했다. 철원 심원사에서 출가하여 심원사 석대암 주지를 지낸 해공스님은 6·25 때 이 절 지장보살상을 등에 지고 피난 해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심원사에 모셨으며 도피안사를 재건하는 공덕을 쌓았다.
 
1964년 48세에 명륜동에 있던 자인사를 지금 자리로 이건하여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안덕암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불사리 1과를 봉안해 사리탑을 조성하는 등 20여년에 걸쳐 불사를 했다. 그 뒤를 이어 해공스님의 참회상좌로 심원사 주지였던 영도스님이 현재의 가람으로 일신했다.
 

<자인사 잿터바위, 월간 山 참조>

 
다만 이 절의 터는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도전을 지나이 절의 주전인 극락보전으로 가는데 큰 바위가 눈길을 끈다. '잿터바위'다. 905년 고려 왕건이 궁예의 명을 받아 후백제와 전장을 가던 길에 이 바위에서 재를 지내고 현몽하여 승전했다. 얼마 뒤 궁예가 왕건에 쫓겨 숨어들었는데 이번에는 궁예가 이곳에 재를 지냈다. 음식을 놓고 재를 지내던 터라고 해서 '잿터바위'라고 한 것이다.
 
왕건은 자신의 앞날에 늘 등불을 밝힌 이 곳에 암자를 짓고 절 이름을 그의 시호를 따서 신성암(神聖庵)이라 했다. 300여년이 지난 뒤 절이 불타자 충렬왕3년(1227)에 중건하고 왕건의 자호를 따서 약천암(若天庵)이라 했다. 자인사는 미륵을 지칭하는 자비(慈悲)에 용서와 화해를 담은 인(仁)을 담아 궁예왕과 왕건이 이생에서의 악연을 풀고 미륵세계를 구현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자인사와 명성산은 궁예의 최후가 서린 곳이다. 부하 장수 왕건에 패한 궁예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울었다 하여 명성(鳴聲), 혹은 울음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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