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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전시, 문화 여행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소개(4)

by 3000포석정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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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

18세기 카를 6세 황제의 시대, 내정을 불안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 있었습니다. 카를 6세에게 아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카를 6세는 장녀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1740년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맙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랜 기간 왕위 계승 전쟁을 치르고서야 그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힘들게 왕의 자리에 오른 만큼, 마리아 테레지아는 근대화를 추진하며 대내적으로 근검절약하는 검소한 왕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녀가 머물던 쇤브룬 궁전도 수수한 양식으로 개조하고 진흙에서 추출한 노란색 안료로 벽을 칠해 '마리아 테레지아 엘로'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벨베데레 궁전으로 옮겨 전시하고자 했고, 아들 요제프 2세 때 벨베데레 궁전을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하여 그 뜻을 이루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궁, 위키디피아 참조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존경을 표하는 행렬

1740년 10월 20일 카를 6세 황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장녀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왕이 된다. 1740년 11월 20일 새로운 왕에게 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빈 시내 호프부르크궁에서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이어졌다. 고위직 관료들이 앞장서고 마리아 테레지아 마차가 뒤따른다. 빈 마차는 서거한 카를 6세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평화의 여신상(좌),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우)

<마리아 테레지아와 평화의 여신상> 마리아 테레지아의 대형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스케치다. 1765년 남편 프란츠 1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지냈을 정도로 남편을 사랑했다. 화려한 장식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모습은 이전에 그려진 강하고 아름다운 군주의 초상과는 다르다. 뒤편에는 날개 달린 아기천사와 함께 있는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 조각상이 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1766년 4월 2일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열린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 공작 알베르트의 약혼을 축하하는 공식 연회를 그린 것이다. 테이블 중앙에는 요제프 2세 황제와 황후가 자리하고 있고, 황제의 오른쪽에 신랑신부가 있다. 테레지아의 두 남자 대공과 후일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는 마리아 안토니아를 포함한 다섯 여자 대공이 왕위 계승 순서대로 앉아 있다.

세면도구와 잔세트(좌), 아폴로와 다프네이야기가 있는 술잔(우)

<세면도구와 잔세트> 총 70여 점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용 식기와 세면도구 일부로, 순도 높은 금으로 제작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침 의례 때 실제로 사용한 용구는 차, 커피, 핫초콜릿을 마시는 데 사용된 각기 다른 종류의 주전자와 그에 맞는 마이센 자기 잔, 설탕 그릇, 숟가락 등이 있다. 이 작품은 녹인 초콜릿을 마시는 데 사용한 잔 세트이다.

면도용 칼, 거울, 촛대, 대야, 물 주전자를 포함한 면도 세트도 함께 있어 프란츠 1세의 물건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으로 만든 세면도구 세트는 실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물건으로, 이를 증명하듯 닳거나 흠이 난 것이 거의 없다.

 

<아폴로와 다프네이야기가 있는 술잔> 잔에는 아폴로와 다프네 이야기가 장식되어 있다. 잔 몸통에 장식된 세 개의 원형 창에는 다프네에게 구애하는 아폴로, 다프네를 따라가는 아폴로, 그리고 월계수로 변신하는 다프네가 묘사되어 있다. 뚜껑에는 아폴로가 짝사랑하기 전에 일어난 세 가지 사건, 즉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한 피톤을 격파하는 아폴로, 큐피드를 놀리는 아폴로, 아폴로에게 황금 화살을 쏘는 큐피드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셔벗용 식탁 장식(좌),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있는 함(우)

<셔벗용 식탁 장식> 작품 전체를 조가비로 장식한 보기 드문 식탁 장식이다. 조가비 장식에는 고전주의 양식의 흉상들을, 금장식에는 흉상과 트로피를 묘사했다. 셔벗 그릇 위에 달린 초상 부조 장식은 초상 인물들이 함께 셔벗을 먹을 때 이 그릇을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이 장식은 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장식에 묘사된 황실 사람들을 통해 연대를 유추할 수 있다. 1740년에 사망한 카를 6세 황제와 1736년에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한 로트링겐 공이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36년과 174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있는 함> 갈고등 껍데기로 만든 함으로, 껍데기를 깎아 타원형 뚜껑을 만들어 열고 닫을 수 있게 경첩과 물결 모양 금장식으로 붙였다. 뚜껑에는 프란츠 1세(1708~1765)와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의 부부 초상을 새겼다. 가슴갑옷과 망토를 입은 황제는 황금양모 기사단 목걸이와 월계관을 썼고 황후는 작은 왕관을 썼다. 조개껍데기와 달팽이를 소재로 한 공예품은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 큰 인기를 끌었다.

성(聖) 안드레아(좌), 성(聖) 세바스티안

<성(聖) 안드레아> 성 안드레아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다. 그는 Ⅹ자 모양의 십자가에서 처형되어, Ⅹ자 십자가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18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11세(1649-1721)는 로만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중앙통로 벽감에 안치하기 위해 대형 사도 조각상 12점을 주문한다. 이 작품은 실제 대리석 조각으로 작업하기 전 제작한 축소판 모형 중 하나이다.

 

<성(聖) 세바스티안>  고대 로마 황제의 근위대장인 성 세바스티안은 기독교 신자들을 몰래 도왔다. 이를 알게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44-311)는 사형 선고를 내리지만 그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선고에서 세바스티안은 순교한다. 작품은 세바스티안이 첫 번째 사형 선고로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는 장면을 묘사했다. 비록 몸에는 화살이 꽂혔지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 전염병을 막는 수호성인의 상징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제복

<프란츠 요제프 1세> 역대 최장기간 오스트리아를 다스린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1848년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되었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을 결성하여 헝가리 왕으로 즉위했다. 이 초상화는 1896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축제 무렵에 주문된 것으로 보인다. 황제는 이 초상화를 한 헝가리 귀족 가문에게 선물했고, 빈미술사박물관은 1956년 파리에서 이 작품을 취득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제복>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군대는 독일 군복과 헝가리 군복을 모두 입을 수 있었다. 이 제복은 헝가리식 제복으로 밝은 회청색 재킷은 기병대의 금몰 장식으로 여미게 되어 있다. 금색 자수로 아칸서스 잎 무늬 계급장을 장식한 옷 소매는 빨간색 깃 장식과 함께 화려함을 더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중 제국 시기 육군 최고 사령관으로 육군 원수의 계급이었고, 상황에 따라 독일 군복과 헝가리 제복을 번갈아 입었다.


지금까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4편에 이어진 전시 관람 후기를 마칩니다.^^

 

이후에도 좋은 전시전을 찾아서 전시 관람 후기를 올릴 예정이니 '구독'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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