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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한번은 가보고 싶은 명산(경상도), 선석산과 선석사

by 3000포석정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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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선석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칠곡군 약목면

-산높이 : 742.4m

 

선정이유

선석산은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영암산(鈴岩山, 784m), 비룡산(飛龍山, 546m), 시묘산(侍墓山, 367m)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선석산에는 사적 제444호로 지정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을 비롯하여 천년고찰 선석사(禪石寺)와 자연 전망대 역할을 하는 용바위, 태봉(胎峰) 등의 바위가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는 정상으로부터 약 2분 거리에 있는데 이곳에 서면 첩첩이 쌓인 가야산과 금오산 줄기가 펼쳐지고,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용바위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태봉에서 내려다보면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단지가 호수처럼 펼쳐진다. 태봉 근처에는 조선시대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9기가 묘여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다.

 

옛날에 백성들은 아이를 낳고 태는 왕겨에 묻혀 마당에서 태웠다. 남은 재는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러나 왕가에서는 태는 씻어 항아리에 넣고 기름종이, 명주 등으로 밀봉, 다시 큰 항아리에 담아 명당에 안치했는데 태봉(胎封), 태실(胎室), 태장(胎藏)으로 불렸다. 주변은 금표로 접근을 제한했다. 세세연년 왕업의 계승을 염원했을 것이다. 태실이 안치된 고을은 조세를 감면해 주거나 군현으로 승격시켜 백성들은 긍지로 여겼다. 태봉이 만들어질 때까지 태실도감(胎室都監)을 두기도 했다.

 

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선석사는 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원래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고려시대 공민왕 때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한다. 그때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를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개칭했는데 이로 인해 산의 이름도 선석산이 되었다.

 

 

선석산 등산코스

 

▶등산코스

세종대왕자 태실 코스(왕복 5km, 3시간 정도 소요)

세종대왕자 태실 주차장~갈림길(왼쪽)~묘지~영암산 갈림길~선석산 정상~용바위~태봉바위~불광교 갈림길~계곡~불광교 ~주차장(원점회귀)

 

신유장군 유적지 코스(왕복 11km, 5시간 정도 소요)

신신유장군 유적지 사거리~잇단 갈림길~약수터~배시기 갈림길~비룡산~전망대~잇단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선석산~마당바위 전망대~안부 사거리~잇단 갈림길~정자~잇단 갈림길~시묘산~원점회귀 코스

 

신유장군 유적지 주차장에서 사거리로 올라 왼쪽 두만저수지 제방 쪽으로 이동한다. cafe가 있는 이정표 방향이다. 비룡산(2.2㎞) 이정표와 두만지 안내판이 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호두농장 입구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독립가옥을 만나면 서진산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산길로 진입한다. 서진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는 왼쪽 길을 가리키고 있고 그 방향으로 리본도 많이 달려 있지만 취재팀은 오른쪽으로 간다. 왼쪽은 능선을 따르는 길, 오른쪽은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다. Y자 갈림길에서 왼쪽 비룡산(1.2㎞) 이정표를 따른다. 약수터가 나타난다.

 

 

갈림길에서 비룡산(380m)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정표에 왼쪽은 '배시기(2140m)'로 표기돼 있다. 조금 올라 다시 배시기 갈림길에서도 직진한다. 산행 초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뜻의 비룡산답게 정상까지 된비알이 이어진다. 정상에는 약목비룡산악회와 설령산악회가 세운 정상석 두 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정상을 지나면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선석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단풍이 화려하다. 단풍 오른쪽에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선석산이다. 편안한 능선이 이어진다. 이제부터 서진산(선석산)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태봉바위에 도달한다. 세종대왕의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를 안장한 태봉자리를 이곳에서 살펴봤다는 설이 있다. 바위에 서면 태실이 보여 명당자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뒤로 저수지가 있다. 참외 캐릭터가 붙은 벤치를 지나면 용바위를 만난다. 용의 머리를 연상시켜 용바위라 불린다는데 언뜻 봐선 모습을 찾기 어렵다. 안내판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바위인데 바위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봐야 용이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드디어 선석산 정상에 오른다.

 

 

선석사 역사와 유래

 

692년(효소왕 1)에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으나, 현재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361년(공민왕 10)에는 나옹(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혜묵(惠默)ㆍ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대웅전ㆍ명부전ㆍ칠성각ㆍ산왕각ㆍ어필각(御筆閣)ㆍ정법료(正法寮) 등의 당우를 갖추었다.

 

세종의 왕자 태실(胎室)이 있는 태봉(胎峰)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므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어필각이었으나 그 뒤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선석사 주요 불교 문화유산

<성주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산회괘불탱(보물)

선석사 영산회괘불탱은 제작시기가 비교적 빠르고 연꽃을 든 석가여래 도상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는 점, 이 그림을 모본으로 하여 보물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1709년)가 현존 한다는 점 등에서 불화도상의 계승을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색채감각이나 필선이 매우 세련되고 뛰어나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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