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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선암사, 천년불심(天年佛心)길이 이어준 사찰(3)

by 3000포석정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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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조계산(曹溪山)의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선암사(仙巖寺)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이다. 불교에서 총림이란 경전교육기관인 강원, 참선, 수행 도량인 선원,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을 가진 사찰로, 조계종의 5대 총림으로는 조계 송광사, 영축 통도사, 가야 해인사, 덕숭 수덕사, 고불 백양사가 있다.

 

태고종의 탄생 비화
태고종은 한국 불교의 한 종파로 일제 강점기 시절, 불교 말살 정책으로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대처승 제도로 부터 생겨났다. 1954년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불교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대처승을 친일승이라고 해서 이들 모두 승적에서 파문시켜버렸다. 비록 가정을 같고 있는 많은 대처승들은 항일 독립운동가였고, 불교 교육자들이었다. 이에 발반한 대처승들은 1970년 태고 보우국사를 종조로 선암사를 총본산으로 하여 태고종을 만들었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려온 바위라고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건하였으나 화재로 다시 중창하였다. 선암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운치가 있는 길이고 봄의 전령사 매화가 유명하여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절이다. 이 절은 선종(禪宗)ㆍ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送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 선암사 승선교

매표소를 통과하여 사찰까지 이어진 숲길은 절까지 1.5km 정도 길게 이어져 있다. 아름다운 숲길을 걷다 보면 길옆에 서 있는 목장승이 두개가 보인다. 이 장승은 1987년에 만든 것으로 남자 여자가 아니라 두 장승 모두 남자상이란 점이 특이하다. '방생정계〔放生淨界〕 , 이곳부터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호법선신〔護法善神〕불법을 수호하고 성불하게 돕는 착한 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양 벽송사 목장승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장승으로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고 있다. 선암사 흙길을 반쯤 지나면 '홍예교'라는 작은 아치형 돌다리가 나타난다. 우리말로는 무지개다리다. 작은 홍예교는 조금 있으면 선암사의 절경이 시작된다고 앞장서 알려주는 일종의 전령이다. 작은 아치형 다리에 올라서면 이윽고 이보다 훨씬 장대한 또 하나의 무지개다리가 시선 속으로 들어온다. 선암사만큼이나 유명한 '승선교'이다. 승선교를 조금 더 깊이 강상 하려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는 게 좋다.

 

<선암사 승선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승천교는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석교이다. 계곡의 폭이 넓어 아치 또한 유달리 큰 편으로, 아랫부분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이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물에 비친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 승선교는 그 밑단 부분이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급류에도 휩쓸릴 염려가 없다, 가운데 부분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웅장하며, 자연미를 풍기고 있다. 이 다리는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암사를 지을 때 원통전과 함께 설치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승선교 밑에서 시선을 저 앞으로 던지면 신선이 내려와 노는 누정이라는 뜻의 2층 누각인 강선루가 보인다. 승천교가 신선이 승천하는 곳이라면 강선루는 신선이 내려와 머무는 집이다. 승선교에서 자연을 즐기다가 천상이 그리우면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인간 세상을 잊지 못해 구름을 타고 강선루로 내려오고, 승선교와 강선루는 하나의 묶음입니다. 승선교는 장대한 석조 건축물이고, 강선루는 담백하고 소박한 2층 목조 구조물이다. 그리고 둘은 100미터 안팎의 거리를 두고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둘은 하나다.

 

 

 

선암사 야생차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전통을 이어받아 800년의 역사가 있다. 선암사에 처음으로 차를 보급한 분은 도선국사로 선암사 일주문 주변에 차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인 대각국사는 칠구선원을 신축하고 현재 칠전선원차밭에 차를 심었고 여기서 수확한 차를 법제하여 송나라에 수출하였다고 전해진다. 차배지에서 생산한 야생차는 화개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순자연산 야생차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선암사 야생차의 특징을 구수하고 깊은 맛'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차나무가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고 운무와 습한 기후가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선암사 차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선암사 차밭은 규모가 크지 않아 수확량도 적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 선암사의 자연의 선물 '선암매'

숲길과 승선교와 야생 차밭이 선암사 밖의 매력이라면 사찰 경내의 빛나는 보물은 나무들이다. 나라 안의 이름난 절이 대개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경내로 나무를 들인 절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무를 들인다 해도 잘 생긴 소나무나 느티나무, 배롱나무나 몇 그루의 정원수를 심은 게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선암사는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나무가 많다. 특히 대웅전 뒤쪽, 그러니까 원통전 영역과 삼성각 앞마당은 차라리 사원이라기보다는 고택의 정원과 같다. 자산홍, 벚나무, 동백나무, 단풍나무, 매화나무, 석류나무, 은행나무, 사철나무, 영산홍, 측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절집이 아니라면 수목원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나무들은 마당과 화단에 두서없이 서 있고 언뜻 보면 질서가 없어 보이나 덜 정리된 모습이 오히려 정겹고 자연스럽다. 그 나무 중에서도 선암사는 선암매로 유명하다.

 

<선암사 선암매?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울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외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선암사의 '아름다운 해우소'

선암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펼쳐져 있다. 크게 보면 대웅전 영역을 비롯하여 원통전 영역, 웅진당 영역, 각황전 영역 등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그 영역 사이의 구획이 사실은 에매모호 하다. 그중에서도 선암사 해우소는 시인 정호승의 「선암사」때문에 유명해졌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선암사 해우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선암사의 3무(無)

선암사 사찰에는 3가지가 없다.

一無 御間門(어간문이 없고),

二無 柱聯(주련이 없고),

三無 四天王門(사천왕문이 없다.)

 

무 어간문(無 御間門)

'선암사 대웅전에는 어간문이 없다.' 어간문을 사전에서는 방과 방 사이에 달린 문이라 풀이하는데, 절에서는 대웅전의 앞 가운데 칸을 '어' 칸이라 부른다. 이 문을 어간문이라 하고, 이 문 앞에 서면 부처님의 상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간문을 궁궐에 비유하면 왕만이 드나들 수 있는 가운데 큰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선암사의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가운데 문이 있어 필요에 따라 여닫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의 실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암사의 어간문(중앙 문)을 자세히 보면 하단에 자주색으로 단청된 창틀모양이 있다. 이것은 창틀이 아니라 사람들의 어간문 출입 금지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약 56cm 높이의 '머름'이다. 머름을 설치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부처님의 통행문인 어간문의 존엄을 지키자는 뜻이고, 선암사 대웅전 출입은 모든 사람이 좌우의 옆문으로 드나든다. 다른 절의 대웅전과 비교되는 선암사 대웅전의 '무 어간문'의 실체이다. 천오백 년의 역사를 지닌 선암사 불법대전의 신성한 본존 앞에서 무 어간문이라는 겸양의 실천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여행길의 아름다운 현장이다.

 

무 주련(無 柱聯)

주련의 한자어는 주(柱)는 기둥이며, 연(聯)은 늘어뜨린다는 의미와 옛날 중국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시를 지을 때 한 사람이 한 구(구절)씩 지은 다음 이를 합하여 완성시킨 시의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기둥이나 벽에 써서 붙이는 글귀'라고 풀이한다. 우리나라의 정자나 사찰, 향교. 서원 등의 기둥에 좋은 글귀를 판자에 세로로 쓰거나 새겨 교훈적 의미로 매달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선암사 대웅전에는 주련이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전당에도 주련을 달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이는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여는 것은 곧 혼란이요, 뒤섞임이니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말은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주련도 글로 표현한 말이므로 정신으로 이루려는 공과 무의 바탕을 눈을 통한 혼란으로 뒤섞는다는 것이다. 선암사(대웅전)에 주련이 없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스스로 인식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혼란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깨달음의 본질인 ‘무(無)’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무 사천왕문(無 四天王門)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이며,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지킴이이다. 절을 구성하는 많은 불당들 중 하나 혹은 몇몇의 당을 두거나 두지 않는 것이야 절마다의 특징이거나 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문(부처님의 세계)을 지키는 호위병(신)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선암사 주지를 지낸 혜운 노장스님의 말에 따르면 선암사에도 일주문과 종고루 사이에 사천왕문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후에 다시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선암사는 인공적인 건축물이 부각되지 않고 자연과 사찰이 어울리는 절집이다. 나무와 나무가 상생하고, 건축물과 자연이 하나 됨으로써 더 아름다워진다. 선암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과 사찰 건축물이 어우러진 한국의 진정한 사찰의 미를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웅변하는 절이 선암사인 거 같다.

 

<선암사 대웅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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