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산선문 가지산파의 탄생
보림사는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寶林寺)는 통일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터를 잡아 헌안왕 4년(860)에 창건하였다. 선종의 도입과 동시에 신라 구산선문 중 제일 먼저 개산한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이었다.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으로 불렸다. 인도와 중국에도 같은 이름의 사찰이 있기 때문이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탄생
8~9세기 신라의 많은 승려가 중국에 선진 불교를 배우러 떠나 경전의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으로 체득하는 '새로운 불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국에는 화엄종ㆍ법상종 중심의 교학불교만 알았던 승려들은 중국에서 새 바람이 불던 선불교를 배우고 돌아온 것이다. 그 승려들 중에도 도의(道義)가 있었으며 도의는 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다 821년 귀국했다. 교종 승려로 떠났다가 선종 승려가 되어 돌아온 도의에게 교학의 신라 불교는 설 자리를 주지 않았다. 도의는 선불교가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함을 직감하고 설악산 진전사로 들어가 제자 염거에게 남종선을 전하고 입적했다. 제자 염거는 다시 제자 체징에게 스승의 법맥을 전했고 체징은 전라남도 장흥 가지산에 선문 가지산파를 세워 크게 선풍을 떨쳤다. 이때 헌안왕은 체징을 경주로 불렀으나 오지 않자 그가 머무는 절에 '보림사'란 이름을 내렸다.
보조선사 체징이 가지산문을 연 후 도의를 개조(開祖, 제1세), 염거를 제2세, 자신을 제3세라고 대외에 선포하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렸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도 가지산문에 속했다. 이를 전후에 각지에 9개의 산문이 열리니, 이것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시작이다.
도의선사는 한국 불교에서 선의 종조(宗祖)가 되었으며, 이는 다시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가 되었으니 조계종의 뿌리인 것이다. 조계종은 도의선사에서 기원하고 보조국사 지눌의 선교일치 정신을 이어받아 보우국사 태고가 구산을 통합하면서 공식 등장했다.
모두 선종 불교의 본산이라 자랑한다. 장흥 보림사는 중국 달마의 선법을 이은 아홉 산문, 즉 구산선문 중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이다. 한때 88개의 전각을 갖춘 큰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순천 송광사의 말사다. 이곳 가지산은 빨치산의 은거지였다. 보림사의 전각도 한국전쟁 중 전소됐다. 지금의 건물은 모두 그 이후에 세운 것이다. 보림사도 창건 당시엔 깊은 산중이었겠지만 지금은 절간 담장 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대찰의 풍모는 넓은 절터로 확인된다. 절 마당이 광장이라 해도 될 정도로 넓고 휑하다.
▣ 보림사의 보물들
목조 건물이 모두 불타는 와중에도 보림사의 석물과 철물은 화마를 피했다. 남ㆍ북 삼층석탑 및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로 지정돼 있고, 보조선사탑과 탑비, 동승탑과 서승탑이 보물 목록에 올라 있다. 건물 규모만 따지면 대웅전이 으뜸이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비로자나불이 안치된 대적광전이 앞자리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의 불상에 비해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들었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 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철조불상은 나말여초에 잠시 유행했다. 철은 동(銅)에 비해 조각술이 어렵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은 당시 신라는 왕실의 권위 약화와 지방 호족 세력의 난립으로 어수선했던 시절이었으므로 헌안왕은 왕실의 위상을 높임과 동시에 비로자나 장육상을 봉안해 민심 수습과 화합을 위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2기의 삼층석탑과 석등도 대적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다.남북으로 세워진 두 탑은 구조와 크기가 같으며, 2단으로 쌓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기단은 위층이 큰데 비해 아래층은 작으며, 위층 기단의 맨 윗돌은 매우 얇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으며, 각 층 몸돌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는데, 2·3층은 희미하게 나타난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계단형으로 5단씩이고, 처마는 기단의 맨 윗돌과 같이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는 심하게 들려있어 윗면의 경사가 급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여러 개의 머리장식들을 차례대로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석등 역시 신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석등의 지붕 위에는 여러 장식들 놓여 있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모두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본래 석등은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여 빛으로서 그 뜻을 나타내는 조형물이다. 화엄사, 부석사를 비롯한 고찰들은 석등 하나를 정전의 정면에 비치하여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의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후대에는 의미가 퇴색되어 조명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에 정전에 모신 불상의 시선을 피하여 정전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등답게 본래 의미대로 석등 하나가 정전 중앙에 배치되었는데, 탑과 함께 온전한 세트로 보존되어 가치가 높다. 국보 제44호로 지정되었다.
▣ 보림사 비자나무숲
보림사 뒤쪽으로는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있다. 300년이 넘은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참나무와 단풍나무, 소나무도 많이 서식해 있다. 이 숲은 1982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됐다. 비자나무 숲 사이로 시냇물처럼 산책로가 나 있다. 숲 곳곳에는 의자와 삼림욕대도 마련돼 있다. 산책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누구나 걷기 쉽고,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기기에 딱 좋은 길이다. 그 옛날 방랑시인 김삿갓이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림사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고 하니, 경내를 천천히 구경하고 숲길을 산책하면서 주변에 있는 김삿갓의 마지막 시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비자나무는 온대지역에서 자라는 상록수로 탄력이 좋아 건축, 가구, 조각 재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잘 갈라지지 않아 최고의 바둑판 재료로 대접받는다. 현재 남해안 및 제주도에서 드물게 자라는데,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비자나무 바둑판을 전혀 만들 수 없다.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좋은 바둑판 하나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다. 이들은 은행나무나 피나무로 만든 바둑판 하나가 서재에 놓여만 있어도 자랑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최고급품은 비자반(榧子盤)으로 친다. 나무에 향기가 있고 연한 황색이라서 바둑돌의 흑백과 잘 어울리며, 돌을 놓을 때 들리는 은은한 소리까지 그만이란다. 처음에는 표면이 약간 들어가 있는 듯하지만 바둑을 다 두고 돌을 바둑판에서 치우고 나면 다시 회복되는 탄력성은 다른 나무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랑거리다.
고려 이전만 해도 비자나무는 널리 자라고 있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벌써 세종, 예종, 성종 때 여러 번에 걸쳐 비자나무판자의 수탈에 관한 지적이 있었으며, 영조 39년(1762)에는 제주도에서 바치는 비자나무 판자 때문에 백성들의 폐해가 심해 일시 중지시킨 기록도 있다. 그래서 우리와 가까이서 삶을 함께해 온 비자나무 숲은 안타깝게도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몇 곳만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니 보림사 비자나무 숲이 얼마나 소중한지 왜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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