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사 무소유길과 법정스님
매표소를 통과하여 송광사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무소유길'로 가는 갈래길이 나온다. '무소유길'은 송광사 불임암으로 올라가는 길로 법정스님께서 자주 걸으셨던 길로, 대나무 숲을 비롯하여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불임암에 다다른다.
불임암은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스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 아래 유골이 모셔져 있어 스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송광사는 현대의 법정스님 이외에도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절 입구에 지팡이를 꽂은 1천 2백년 동안 한 번도 그 위엄을 잃은 적이 없는 대찰(大刹)이다. 신라 말엽 혜린 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정혜결사를 이루고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16 국사를 배출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부유스님이, 근래에는 효봉 구산스님이 전통을 이어받은 도량이다. 특히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곳이다. 또한 송광사는 연꽃 지형으로 여느 사찰과 달리 탑은 없지만 전국 사찰 중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유물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안겨준다. 목조 문화재가 많은 송광사는 경내에 약 8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국내 단일 사찰 중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16 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 등의 국보 3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울인 쌍향수 등 보물 17점과 지정국사 사리탑 등 지방 문화재 10점을 포함해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고향수 옆에서 송광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수한 전각 2개가 있다. 각각 아주 작은 단칸 건물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당(滌珠堂)이다. 죽은 자의 혼을 실은 가마의 관욕처다. 세월각은 여자의 영가를, 척추당은 남자의 영가를 관욕한다. 관욕이란 불교에서 제(齊)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다. 혼백이 목욕하는 곳으로 이해하면 된다.
▣ 송광사의 절경
송광사의 백미는 삼청교와 우화각이다. 송광사 일주문을 통해 들어오면 우화각 옆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의 누각은 우화각이다. 하류 쪽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송광사 최고의 풍경을 자랑한다. 삼청교는 능허교라고도 부른다. 네모난 돌 19개로 만든 무지개 모양의 다리이다. 옛날에는 시인과 묵객이, 오늘날에는 사진작가들이 줄 잇는 곳이다.
▣ 송광사의 뛰어난 건축물
광장 북쪽의 승보전 측면 방향의 관음전은 고종황제와 인연이 있다. 1903년 고종이 성수망육(聖壽亡六) 51세를 맞아 '성수전'이란 편액을 내리고 황실 기도처로 삼았던 곳이다. 이후 관음전으로 바뀌었는데 내부 관세음보살 좌우의 태양과 달 그림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한다.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벽화로 장식된 특징을 갖고 있다. 관음전 뒤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보조국사 감로탑이 있다.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를 떠올리게 하는 유물이다. 1210년 열반하자 고려 희종은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다. 관음전 옆 지붕 위에 작은 지붕이 하나 더 있는 특이한 건물은 하사당이다. 조선 세조 7년에 지은 건물로 지붕 위의 솟을지붕은 부엌 위의 환기구다. 우리 조상의 지혜는 이미 500~600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송광사에는 세 가지 명물이 있다. 송광사의 첫 번째 명물로는 '비사리구시'를 들 수 있다. 비사리구시는 우선 크기부터 이를 압도한다. 비사리구시는 1742년 남원 세전골에서 태풍으로 쓰러진 싸리나무를 이용해 만든 그릇이다. 당시 대중의 밥을 담아 두는 데 사용했는데 쌀 일곱 가마분(4천 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비사리구시는 천왕문 안에 있기 때문에 송광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능견난사이다. 사찰의 음식을 담는 일종의 그릇인 능견난사는 크기와 형태가 일정한 수공예품으로 그 정교함이 돋보인다. 능견난사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세 번째는 쌍향수이다. 곱향나무라 불리는 송광사의 명물로, 조계산 마루 천자암 뒤뜰에 있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란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인 데다,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 송광사만의 보물
송광사에 온 만큼 빠트리지 말고 봐야할 게 성보박물관에 있다. 그것은 바로 목조삼존불감이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불감은 모두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의 작은 방에는 각각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양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2줄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고,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왼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쪽 방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낸다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살의 왼쪽에는 동자상이, 오른쪽에는 사자상이 서 있다. 왼쪽 방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보살의 좌우에는 동자상이 1구씩 서 있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의 장식과 얼굴 표현 등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당나라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고려시대 지눌이 활동하던 때와는 달라서 어떻게 송광사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감으로서 가장 탁월하여 국보 4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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