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도 유명하지만 두물머리에서 조금만 가면 만날 수 있는 수종사(水鐘寺)는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하고 아름다운 사찰이다. 지하철 운길산역에서 하차하여 사찰까지 등산으로도 갈 수 있어서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등산과 함께 사찰을 방문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사찰 중 하나이다. 사찰이 있는 운길산은 광주산맥이 남서로 내려오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웅장하지 않지만 그윽함이 감도는 명산이다.
▣ 수종사의 빼어난 풍경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본 풍광은 빼어난데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한강으로 합류하지 직전의 부한강의 물길이 장관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1439년(세종 21)에 조성된 부도로 확인되어 조선 초기에 창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때 세조가 직접 심었다는 5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는 높이 35m, 둘레 6.5m로 현재까지도 푸르른 나뭇잎과 함께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수종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세조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선(龍船)을 타고 양수만(兩水灣: 현재 양수리)에서 하룻밤 머물고 있을 때였는데 밤에 홀연히 어디에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사람을 시켜 그 출처를 찾게 했더니 그곳에는 바위굴이 있었고 내부에 십팔나한상이 있었따. 종소리는 굴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울려 나온 소리로 청아하고도 명징하게 들렸던 것이다. 세조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이곳에 축대를 쌓고 장인(匠人)들을 불러 절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전답을 하사하고 승려를 거처하게 하였으며 절 이름을 수종사라 하였다 한다.
수종사는 세조 이후 왕실의 원찰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풍광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다. 사계절 내내 꽃ㆍ신록ㆍ단풍ㆍ설경이 아름답고, 일출ㆍ일몰ㆍ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신비스러운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위에 나온 사진처럼 산신각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사찰 경내와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
서거정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자랑했고, 초의선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시를 짓고 차를 마시며 주변 경관을 마음에 담았다. 정약용은 수종사의 세 가지 즐거움을 "동남쪽 봉우리에 석양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는 즐거움, 강 위에 햇빛이 반짝이며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 한밤중 달이 대낮처럼 밝아 주변을 보는 즐거움"이라 했다. 사찰의 아름다움이란 가서 볼 때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겸재 정선이 그린 <경교명승첩>의 일부로서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와 인물화로 구성된 정선의 그림이다. 1741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정선이 사망한 1759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겸재도 두물머리와 수종사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아 '독백탄'을 남겼으며, 이 그림의 배경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균 양수리 부근 여울이다. 가운데 족자섬이 보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운길산이며 정산 부근에 작게 그려진 건물은 수종사로 보인다.
▣ 수종사, 차(茶)의 성지
수종사에는 삼정헌 이라는 찻집이 있다. 차실 한쪽 벽면에는 '自然放下(자연방하)'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 강물을 바라다보노라면 저절로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도심에서의 근심을 실어 보내면 다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수종사의 다실은 우리나라 차계(茶界)의 성지이기도 하다. '남일지(南一枝) 북수종(北水鐘)'이다. 남쪽에는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一枝庵)이 차의 성지이다. 북쪽에는 수종사가 있다.
한국 차의 양대 성지 중 하나가 바로 수종사이다. 성지가 된 이유는 초의선사 때문이다. 초의선사는 조선 차계의 장문인(掌門人: 문파의 우두머리)이다. 초의선사가 이곳 수종사에 머무르면서 다선시(茶禪詩) 10여 수를 남긴 바 있다. 해남 대흥사에서 산길을 올라가면 일지암이 있다. 이 일지암에서 초의선사는 40년을 지냈다. 초의선사는 일지암에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같은 당대의 석학들과 교육하였다. 조선시대 불교를 탄압하던 시대라서 승려의 신분이 낮았지만 다산과 추사와 같은 당대의 양반이자 일급 지성들과 속을 터놓고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이채로운 일이다. 그러한 신분을 초월한 사귐의 매개체가 된 것이 바로 차였다.
차는 조선시대에 귀물로 취급받았다. 아무나 마실 수 없는 비싼 식품이었다. 한반도 대전 이북에서는 차가 생산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당연히 차가 자라지 못한다. 남쪽 지방에서만 나온다. 지금 시대에는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차를 음미하고 경치를 보면서 세속의 번뇌를 잠시라도 놓고 쉬어 가라는 의미에서 삼정헌(三鼎軒) 다실에는 무료로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여 초의선사의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삼정헌은 선(禪), 시(詩), 차(茶)가 하나로 통하는 다실(茶室)이라는 의미로 지난 2000년에 주지 동산스님이 보시했다. 사찰을 찾은 이가 그저 편히 쉬었다 가면 된다는 의미로 찻값은 받지 않는다. 방문객은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다기로 직접 잎차를 우려 마신다. 누구나 자유롭게 실내를 드나들 수 있는 다실로 도량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위치한다. 빼어난 경관을 객에게 내어 준 부처님과 스님의 자비에 감사하다. 나는 수종사를 세 번 방문하였으나 한 번도 차를 마시지 못했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수종사의 역사와 차(茶)를 몰랐고, 두 번째 방문 시에는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해 마침 방문하는 시기에 다실을 열지 않았으며, 세 번째 방문 시에는 다실을 운영하는 보살님께서 임시 휴가를 내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다음 방문 시에는 반드시 차(茶)를 마시면서 번뇌를 강물에 내려놓고 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수종사에서 차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1. 다기 데우고 헹구기
*끓인 물을 숙우에 따른 후 그 물을 다관에 붓는다.
*다관이 데워지면 그 물을 찻잔에 고루 부어 놓는다.
*찾잔의 물은 차를 우리는 동안 퇴수기에 비운다.
2. 물 식히기
*인원수에 맞게 물을 숙우에 부은 후 식힌다(60~70도)
3. 차 우리기
*다관에 차를 넣고, 숙우의 식힌 물을 부은 다음 30~1분 정도 우린다.
(넣는 양 : 1인분에 1 티스푼 정도)
*우러난 차를 숙우에 다 따라서 나눈다.
4. 차 마시기
*바른 자세로 앉아 찻잔을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받치고
빛깔, 향기, 맛을 느끼며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데.
입안에 엄금어 굴리듯 음미한다.
5. 재탕 우려 마시기
*같은 방법으로 하는데 첫 탕 때보다 온도는 점점 높게,
시간은 조금씩 짧게 해서 두세 번 더 우려 마신다.
마무리
1. 물을 다관에 부은 뒤 찻잎과 물을 한꺼번에 퇴수기에 붓는다.
2. 다관에 남아 있는 찻잎은 차시로 걷어낸다.
3. 찻잔 굽을 잡고 입 닿은 부분을 찻잎으로 문질러 씻는다.
4. 숙우에 물을 따르고 찻잔을 헹구어 엎어 놓는다.
5. 가실 때 퇴수기, 물병은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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