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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마이산과 금당사

by 3000포석정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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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마이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ㆍ마령면
-산높이 : 687.4m
 

100대 명산 선정이유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과 금강(錦江) 발원지이고 도립공원(1979년)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중생대 백악기에 습곡운동을 받아 융기된 역암이 침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산으로 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불려짐. 암마이산 남쪽 절벽 밑에 있는 80여개의 크고 작은 돌탑이 있는 탑사(塔寺)와 금당사(金塘寺)가 유명하다.
 

마이산 상세정보

산이라기보다는 탑으로 부르는 게 더 맞을 기경이다. 영어의 타워와는 완전히 부합한다. 서봉 암마이산과 동봉 숫마이산이 나란히 서있는데 그 모습이 꼭 말의 귀처럼 보인다. 남북으로 높은 산이 없어 더욱 장관으로 진안 우주들이나 사양제 수면에 비친 모습은 특히 환상적이다.
 
타포니 지형으로도 유명하다. 바위 표면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패어있는 현상으로 남한 내륙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주성분인 역암이 풍화작용으로 속에서부터 부스러져 생겼다. 신라때는 '섰다산'과 가까운 이두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솟을 용'자 용출산(聳出山)이었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렸다.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 봄에는 안개 속에 신기루처럼 솟은 봉우리가 쌍돛대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야산 위로 우뚝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단풍 든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른다.
 
두 마이산 사이에 있는 절 탑사에는 80여개의 인공탑이 숲을 이루고있다. 둘레 20미터, 높이 15미터에 이르는 것까지 있는데 자연석 돌담불이 140여년 동안을 무너지지 않고 있다.
 
마이산은 옛날 용출산, 동금산 등으로 불려 오다가 이조때 태종이 말 귀를 닮았다고 한 뒤부터 마이산이라 칭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산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산의 기이한 모습과 특이한 경관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붓끝같다해서 문필봉, 바위가 많아서 개골산, 방향을 달리해 보면 돛대를 닮아 돛대봉, 용의 뿔 같다해서 용각봉 등으로 불려진다.
 
마이산은 동서로 큰 암수봉우리 두개가 있다. 동편 숫봉우리는 거대한 남성을 닮았다 하여 서다산(西多山)이라는 옛 이름도 지니고 있는데, 강한 양기를 품고 있어 산길이 험준하여 등산을 할 수가 없다. 서편에 있는 암마이봉은 나긋나긋하게 손짓하는 여성처럼 많은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이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 물줄기를 이루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흐른다. 그 흐름이 반원을 그리고 있어 마이산은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 되고 있으며 두 강의 물줄기는 마이산을 중심으로 태극을 이루고 있다.
 
마이산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이성계는 마이산을 속금산(束金山)이라 불렀다. 일찍이 큰 꿈을 품었던 이성계는 금산 등 전국 각지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는데, 기도가 끝난 어느 날 밤 꿈에 신이 나타나 "금척(모든 제도의 표준임을 말하며를 마음대로 헤아리도록 하라" 라고 했다 한다.
 
그 뒤 고려 우왕 6년(1380년) 고려의 장군 이성계는 전라도 운봉땅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 길에 마이산을 보고 놀랐다. 꿈에 신에게서 금척을 받은 장소가 바로 마이산이기 때문이었다.
 

 

 

마이산 등산코스

▶등산로코스
합미산성 → 광대봉(609m) → 고금당 → 비룡대(527m) → 봉두봉(540m) → 마이산 석탑군(L-8.4km), 4시간40분
보흥사 광대봉(609m) → 고금당 → 비룡대(527m) → 봉두봉(540m) → 마이산 석탑군(L-5.4km), 3시간40분
남부주차장 → 고금당 → 비룡대(527m) → 봉두봉(540m) → 마이산 석탑군(L-3.5km), 2시간20분
남부주차장 → 고금당 → 비룡대(527m) →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L-3.1km), 2시간10분
 
일반적이니 등산 코스
남부주차장 → 고금당 → 비룡대(527m) → 성황당 → 봉두봉 → 마이산 석탑군(탑사) → 은수사 → 천황문 →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 : 5.7km (3:30 ~ 4:00 소요)
- 마이산 석탑군(탑사) → 남부주차장 : 5.0km
- 성황당 →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 : 5.7km
- 천황문 → 암마이봉 →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 : 7.2km
- 등산로에서 봉두봉을 거치지 아니하고 탑사로 가기 위하여는 탑영제 이정표를 따라 내려와서 탑사로 가면됨
※ 마이산 석탑군(탑사) → 남부주차장 : 1.5km, 마이산 석탑군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 : 2.5km
 
남부주차장 → 고금당 → 전망대 → 봉두봉 → 천황문 →암마이봉 → 천황문 → 마이산 석탑군(탑사) → 남부주차장 : 6.5km (3:30 ~ 4:00 소요) → 마이산관광단지주차장 : 7.2km

 
본 등산로는 정비가 완료되어 노약자, 어린이도 이용이 가능하며 아기자기한 코스와 마이산의 비경을 관망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코스로 많은 사람이 이용 하고 있다.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경치는 한 폭 의 한국화를 연상시키며, 사시사철 다른 비경을 선사한다. 특히 가을철 단풍과 어우러진 마이산의 비경은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또한 등산로에 위치한 비룡대(전망대)에 올라서면 탁트인 전망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들며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금당사 역사와 유래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외에도 이 절에 서멀지 않은 곳에는 마이탑사(馬耳塔寺)와 단군을 받드는 이산묘(이山廟)가 있다.
 

 

 

금당사 주요 불교 문화유산

 
괘불탱
화면 가득 화려하게 장엄된 여래를 단독으로 그린 괘불인데,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 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괘불은 길이 8.70m, 폭 4.74m의 관음보살 입상으로 광배의 끝부분은 화려한 색을 이용하여 불꽃무늬를 표현하였고, 불꽃무늬 안에는 좌우에 각각 작은 불상을 10구씩 두었다. 머리에는 수많은 부처의 얼굴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이목구비는 작게 표현되었고,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그려졌다.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화려한 장식과 문양의 옷 모습이 화면을 압도한다. 채색은 주홍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녹색과 분홍색, 흰색을 이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숙종 18년(1692)에 화가 명원(明遠) 등 4인이 그린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을 잘 표현하여 통도사괘불탱화 및 무량사미륵불괘불탱화 등과 함께 장엄형 괘불탱화의 최고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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