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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한번은 가보고 싶은 명산(경북), 토함산과 불국사

by 3000포석정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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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토함산 전경, 월간 山>

 

토함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산높이 : 745m

 

선정이유

신라시대에는 5악 가운데 동악(東嶽)이라 하여 호국의 진산으로 신성시하였으며 중사(中祀)를 거행하였다. 신라의 고찰인 불국사ㆍ석굴암이 있으며, 경주국립공원의 대표적인 곳이다.

 

토함산지구에는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재라 할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다. 토함산을 포함하는 경주국립공원은 지리산에 이어 1968년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던 경주국립공원은 2008년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토함산 서남쪽 중턱에 있는 불국사는 서기 540년(법흥왕 27)에 창건하고 751년(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이 중건한 사찰로, 대웅전 앞에는 국보 제20호인 다보탑과 국보 제21호인 석가탑이 있다. 토함산지구는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남산지구와 대본지구를 포함한 8개의 지구가운데 하나이며, 인공성이 높은 다른 지구들에 비하여 703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등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구에 속한다.

 

 

토함산 등산코스

가족과 함께, 친구ㆍ연인과 함께 자연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경주국립공원 대표 탐방코스

불국사 코스

-불국사∼추령 갈림길∼토함산 정상∼탑골 갈림길∼시부거리 갈림길∼보불로(편도 10.5Km, 4시간 소요)

-긴 산행거리로 어린이나 노인들의 산행은 어려우나 석굴암 주차장(왕복 4.4Km, 1시간 40분 소요, 계단 있음 경사도 보통)+ 석굴암(석굴암 주차장에서 +왕복 1.2Km, 경사도 약함)또는 토함산 정상(석굴암 주차장에서 +왕복 2.8Km, 경사도 약함)코스까지는 어린이도 탐방 가능한 코스

-경주 대표 문화재인 불국사·석굴암을 관람할 수 있는 경주국립공원 탐방코스

 

토함산은 벚나무 및 산벚나무의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여 특히 봄철에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으며 수종이 다양하여 가을철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단풍이 특히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불국사에서 석굴암에 이르는 가을단풍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불국사~석굴암 주차장 구간(2.2km, 50분)

불국사 - 석굴암 구간 중 일부 탐방 구간은 차량 두 대가 한번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구간도 있으나, 박석으로 포장되어 있고, 계단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가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봄철(4월 초ㆍ중순)에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낙석 위험 구간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어 탐방에 주의가 요구된다. 탐방로 중간지점에는 약수터가 있어 목을 축일 수 있다. 석굴암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탐방로를 벗어나 왕복 1.2km(30분 소요) 거리를 걸어야 한다.

석굴암진입로(석굴암 일주문~석굴암)는 평지에 가까운 경사도를 가진 넓은 길이기 때문에 탐방에 무리는 없다. 다만 주말이나 수학여행철 같은 성수기에는 길이 많이 붐빈다.

석굴암을 관람하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는 불국사에서 차량을 이용해 8.6Km의 도로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다.

 

석굴암 주차장~토함산 정상 구간(1.4km, 약 35분)

석굴암 주차장 ~토함산 정상 탐방구간은 흙길로 되어있어 탐방이 편하나 일부 급경사 구간이 있어 미끄럼에 유의해야 한다. 둥굴레 군락지, 은방울 꽃 등이 있어 봄철 탐방 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잣나무 군락지도 있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탐방로 중간에 성화 채화지가 있다. 정상부에 다다르면 가을철 산행 시 특히 산불에 주의해야 할 억새군락지가 보인다.

 

▶토함산 정상~시부거리 갈림기 구간(2.4km, 약 35분)

토함산 정상~시부거리 갈림길은 주로 능선으로 된 길을 가기 때문에 경사가 급하지 않아 산행을 하기에 좋다.

 

▶시부거리 갈림길~보불로 구간(4.5km, 2시간)

시부거리 갈림길~보불로 구간은 다른 탐방로에 비해 탐방객이 적어서,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를 걷노라면 고즈넉한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코스다.

 

 

석굴암 역사와 유래

<석굴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불국사 역사와 유래

<불국사, 국립공원관리공단>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절이다. 고려 시대에 만든 역사책《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다. 그러나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웠다고 전한다. 또,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문무왕 때인 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었으며,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자료를 참고로 할 때, 불국사는 처음에 작은 규모로 세워졌던 것을 김대성이 크게 늘려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다. 그 때, 금동 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 그리고 돌로 된 다리와 탑만이 불에 타지 않았다. 왜군의 방화로 불타 버린 불국사의 목조 건물들은 광해군 때인 1612년에 경루ㆍ남행랑ㆍ범종각 등이 복구되었고, 인조 때인 1630년에 자하문, 1648년에 무설전이 다시 세워졌다. 이어서 1659년에 대웅전이 세워지는 등,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가 계속되면서 안양문ㆍ극락전ㆍ비로전ㆍ관음전ㆍ나한전ㆍ시왕전ㆍ조사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복원 공사도 중단되었고, 이미 세워졌던 건물들도 낡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일제 침략기를 맞았다. 1924년에 대규모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ㆍ수리하였다. 그 때 탑 속에서 금동 불상ㆍ사리 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행방 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 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였다. 이 때, 그 때까지 옛 터로만 방치되어 오던 자리에 무설전ㆍ경루ㆍ관음전ㆍ비로전ㆍ화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ㆍ극락전ㆍ범영루ㆍ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불국사 경내 면적은 38만 8,570㎢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 국보급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불국사 주요 불교 문화유산

<경주 불국사 다보탑(좌)과 삼층석탑(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다보탑(국보)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ㆍ너비ㆍ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삼층석탑(국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각 10.75m, 10.29m로 비슷하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ㆍ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불국사에는 더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있으니 아래 블로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00대 명산 대찰(名山 大刹) 이야기 - 종합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경주 불국사, 사찰 역사와 불교 문화유산 소개(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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