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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등산 여행

100대 명산 사찰, 무등산과 증심사

by 3000포석정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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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05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을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하였습니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31)ㆍ도립공원(15)ㆍ군립공원(10) 지역에서 56개가 선정되었습니다. 또 가리왕산, 운장산, 황악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16)과 역사, 문화, 경관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산(28)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족과 동료, 연인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명산(名山)에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사찰이 있다면 사찰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을 같이 둘러본다면 더욱 즐거운 등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어주는 글을 연재하고자 하오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무등산 입석대와 서석대 전경, 월간 山>

 

무등산 소재지 및 높이

-소재지 : 광주광역시 동구,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ㆍ화순군 이서면
-산높이 : 1186.8m
 

100대 명산 선정이유

최고봉인 천왕봉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고, 도시민의 휴식처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보물 제131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있는 증심사(證心寺)와 원효사(元曉寺)가 유명하다.
 

무등산 상세정보

무등산은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산세를 지닌 홑산이다. 가장 큰 특징은 너덜지대로,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장관을 자랑한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운집한 정상,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바위들의 웅장함은 남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임을 반증한다. 특히 입석대, 서석대, 규봉의 바위군상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대단하다. 허나 무등산은 전반적으로 완만한 산세이며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본 전경은 뫼 '山'자를 연상케 하며 호남정맥 흐름의 중심에 솟아 있다. 골짜기들은 맑고 깊은 물을 품어 광주의 젖줄 노릇을 해 왔으며, 위치나 산세 면면이 남도의 으뜸이라 할 만한지라 빛고을 광주를 품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이다.
 
광주시가지에서 동쪽으로 불과 10km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무등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의 형세가 험하지 않고 대부분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특히 산위에는 서석대, 규봉, 입석대등의 웅장한 바위들이 있으며 산기슭과 중턱에는 약사암, 증심사, 원효사 등의 이름난 절들이 자리잡고 있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산 아래에는 각종 놀이 및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무등산 등산코스

당산나무 코스는 남녀노소 무등산에 오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로, 무등산의 중턱에 올라 전체적인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 탐방코스

당산나무 코스

증심사에서 당산나무를 거쳐 중머리재에 이르는 대표 탐방코스(4.0km, 1시간35분 소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따라가는 코스로 누구에게나 쉬운 산행으로 추천하는 탐방코스
 
증심사에서 당산나무를 거쳐 중머리재에 이르는 코스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냈던 당산나무를 지나 위에서 보면 중의 머리같이 생겼다하여 이름 붙여진 중머리재까지 이르는 코스다. 비교적 편안하고 중간에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코스로 무등산 대표코스로 추전할 수 있다.
 
▷증심사 주차장~당산나무 구간(2.3km, 60분)
증심교를 지나 계곡을 건너면 증심사 200m전에 있는 입구 표시석을 지난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아름다운 숲 속 길을 지나가면 증심사를 지나게 되고 이후 본격적인 탐방로가 시작된다. 길은 폭 넓게 잘 정비되어 있으며 일부 돌계단을 지나면 오래된 거목의 당산나무를 만나게 된다. 수령이 5백년이 넘은 느티나무로써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당산나무~중머리재 구간(1.7km, 35분)
당산나무를 지나 숲 속 오솔길을 지나치면 육산의 모습을 벗고 돌과 계단, 바위 너덜 들이 나오는 험난한 길이 이어진다. 천제단, 봉황대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와 만난 후 중머리재에 도착하게되면, 넓게 자리한 평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중머리재다. 중머리재는 무등산 등산길의 요충지로 무성하게 자라는 억새와 철쭉으로 유명하다.
 

 

 
▶새인봉~입석대 코스(무등산의 전체적인 윤곽과 광주시가지의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하여 즐길는 중거리 대표코스)

능선길을 따라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며 입석대ㆍ서석대에 오르는 대표적인 탐방 코스(6.8km, 3시간30분 소요)
 
증심사주차장 입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탐방코스로 운소봉, 새인봉, 서인봉 이렇게 큰 봉우리 3개를 넘은 후 장불재를 거쳐 천연기념물 입석대ㆍ서석대까지 오르는 코스다. 무등산의 멋진 풍경과 정상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광주시가지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어 힘들어도 즐겁게 올라갈 수 있는 코스다.
 
▷증심사 주차장~새인봉 구간(2.7km, 1시간 15분)
증심사주차장을 출발하여 1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면 첫 번째 언덕이 나오고 거기서 약 10분 정도 고갯길을 더 지나면 나무의자가 설치되어있는 두 번째 공터를 만날 수 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20분정도 고갯길을 오르다보면 운소봉에 도착하게 되고 중간 중간 한 눈에 바라보이는 무등산의 풍경과 광주시가지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운소봉에서 5분만 더가면 해발 490m 새인봉에 도착한다. 새인봉은 바위의 모습이 임금의 옥새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주변에는 노송들이 있어 풍경이 일품이다.
 
▷새인봉~서인봉 구간(1.3km, 40분)
새인봉을 출발하여 10분정도 능선을 따라 급한 경사를 내려가면 새인봉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1.3km)하면 서인봉을 거쳐 중머리재로 향하는 길이고, 좌측(1.2km)은 의재미술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서인봉으로 가는 길은 다시 급한 경사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쉼터 한켠에 비상구급함이 설치되어 있어, 응급한 상황시 이용할 수 있다.
 
▷서인봉~장불재 구간(2.3km, 1시간 5분)
서인봉과 중머리재는 지척의 거리다. 중머리재는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것을 스님의 머리에 비유하여 부르게 된 곳으로 무등산 탐방길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중머리재를 출발하여 20분정도 지나면 용추삼거리가 나오는데 길의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며, 삼거리에서 장불재로 이어지는 길의 경사 또한 매우 급하여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다.
 
▷장불재~서석대 구간(0.9km, 30분)

<무등산 주상절리 서석대, 월간 山>

장불재에서 서석대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고 주변 식생을 보호하기 위한 목재데크가 설치되어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입석대와 서석대는 무등산의 가장 대표적인 경관자원으로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주상절리대이다. 입석대에서 서석대를 거쳐 하산을 할때는 무등산과 광주시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중봉을 통하여 증심사방향 또는 옛길을 통하여 원효사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증심사 역사와 유래

860년(헌안왕 4) 철감선사(澈鑑禪師)가 창건하였고, 1094년(선종 11)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수하였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이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 석경(釋經)ㆍ수장(修裝)ㆍ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중창하였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임제종(臨濟宗) 운동의 본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중수를 거듭하다가 1951년 4월 50여 명의 무장공비들에 의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버렸으며, 1971년에 크게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용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9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ㆍ지장전(地藏殿)ㆍ비로전(毘盧殿)ㆍ적묵당(寂默堂)ㆍ종각ㆍ일주문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오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방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1972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층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왼쪽 산록에는 약 3만여 평의 차밭이 있다. 이 차밭은 원래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하여 가꾸어왔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광복 후에는 허백련(許百鍊)이 인수하여 고유의 차를 재배하였다. 1984년 절 주변이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증심사 불교 문화유산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좌)과 증심사 삼층석탑(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 증심사로 옮겨 온 것이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잃어버렸지만 불상 자체는 완전한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유난히 높고 뚜렷하다. 눈ㆍ코ㆍ입 등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있어서 온화하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신체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어서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무릎 너비와 적절한 비례를 이루고 있어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으며 양 팔에 걸쳐진 두꺼운 옷자락은 규칙적인 평행의 옷주름을 이루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이 오른손 검지를 감싸 쥔 형태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형식과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光州 證心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은 조각수법에서 볼 때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통일된 균형미를 보이는 점이 우수하게 평가되며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등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증심사의 오백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각 면에 가늘고 긴 안상(眼象)이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위층 기단에는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한 돌씩이다. 층마다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몸돌이 위로 오를수록 알맞게 줄어들어 안정감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으로,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즈음에 주로 나타나는 양식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가 경쾌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위로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증심사가 창건되었던 통일신라 후기로 추측되며, 1971년 탑을 해체, 복원하였다.
 

<증심사 오백전(좌)과 증심사석조보살입상(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오백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증심사는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지었다. 고려 선종 10년(1094)에 혜조국사가 수리하였으며, 조선 세종 25년(1443)에 김방이 다시 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1년(1609)에 짓고,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백전은 대웅전의 뒤편에 세워진 법당으로, 현재 무등산에 남아 있는 절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오백나한과 10대 제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 고장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앞면 3칸ㆍ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이다.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절은 전남지방에서는 증심사가 유일한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
 
 
석조보살입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창건한 증심사에 범자7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석상은 본래 담양군 남면 정곡리 서봉사터에 있던 것을 고(故) 현준호씨가 사재를 들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체 높이 2.05m의 이 석불입상은 머리에 높은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타원형으로 갸름하여 우아한 기품을 나타내고 있다. 목에 목걸이를 새겨 장식했으며, 옷은 왼쪽 어깨를 감싸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은 왼손을 굽혀서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고, 오른손은 편 채로 내려뜨려 오른쪽 대퇴부 바깥쪽으로 붙이고 있다. 원형의 대좌(臺座)는 상ㆍ중ㆍ하대석 및 지대석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과 같이 높은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 이 석불입상은 세부표현이 간략해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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