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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 여행

수종사와 대흥사, 차(茶)를 통한 두 남자의 우정이 담긴 사찰(1)

by 3000포석정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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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5세 때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빠져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부근을 지나던 스님이 건져 주어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15세에 목숨을 구해 준 스님의 권유로 남평 운흥사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24세에 아암(兒庵) 혜장 선사의 주선으로 1809년 다산초당으로 스물네 살의 젊은 승려가 학문의 배움을 얻고자 찾아오고 다산을 스승의 예로 대하였다.

 

다산은 그에게 유학뿐 아니라 제다법도 가르쳤다. 다산은 『동다기(東茶記)』를 쓰고 초이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다도를 통해 교우의 깊이를 더해 갔다. 이렇게 시작된 초의선사와 다산의 인연은 다산의 큰아들 유산 정학연으로, 유산과의 인연은  추사 김정희로, 추사와의 인연은 당대의 지식인들과 사대부들에게로 이어진다. 그 매개체가 바로 '차'였다.

 

봄비로 나눈 우정

해마다 입춘이면 떠오르는 향기로운 이야기 한 편이 있다. 어느 해 입춘, 제주에서 유배 중인 추사 김정희가 집에서 제일 예쁜 대접을 골라 깨끗이 씻어 장독대에 올려 두었다. 날마다 아침이면 대접을 살피러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다. 대접에 빗물이 고여 찰랑거렸고, 추사는 그 대접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와 벼루에 빗물을 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먹물로 벗에게 편지를 썼다. 추사가 그해 처음 내린 봄비로 쓴 편지를 받은 벗은 초의선사 였다. 단순한 편지가 아니었다.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봄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나, 추사가 친구에게 선물한 것은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온 '봄'이었다. 초의선사 또한 해마다 제일 먼저 나온 찻잎으로 차(茶)를 만들어 선물했는데, 이는 평생지기를 향한 깊은 우정이 아니면 갖기 힘든 정성이다.

 

 

두 남자의 우정

아무튼 강진에서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인연을 맺었고, 이 인연은 다산이 강진의 유배 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두물머리로 귀향했을 때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다산은 초의선사의 스승이기도 했다. 스승이 두물머리로 돌아가니 초의도 스승을 따라 이곳 남양주까지 왔던 것이다. 수종사에 다산이 살던 집까지는 20리(약 8km) 거리나 될까,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면 다산이 살았던 동네인 두물머리가 바라다보인다.

 

20리 정도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스승인 다산이 보고 싶으면 바로 가서 만날 수 있는 거리다. 아니면 다산도 가끔 제자인 초의 선사가 달여주는 차를 마시기 위해서 수종사에 올라왔을 수도 있다. 수종사에 전해진 구전에 따르면, 초의 선사가 너무 수종사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다산을 따라가서 환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초의의 은사 스님이 이곳 수종사에 와서 초의를 해남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대흥사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차를 만들었는데 누구라도 초의가 만든 차, 즉 '초의차'를 마시면 매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 차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차였다. 그래서 중국에서만 차가 생산되고 중국 차가 최고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의선사가 『동다송』에서 우리 차의 우수성을 설명한 것도 그래서였다. 추사가 제주 유배 중에 초의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그토록 졸랐던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그만한 차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의선가가 만든 초의차는 어떤 차였을까. 초의차를 마신 후에 약효를 본 범해선사가 초의선사가 차를 만드는 과정을 시로 남겼다.

 

곡우에 이제 막 날이 개어도

노란 싹 잎은 아직 펴지 않았네

빈 솥에 세심히 잘 볶아내

밀실에서 아주 잘 말리었구나

잣나무 그릇에 방원(方圓)으로 찍어 내어

대껍질로 꾸려 싼 다음 저장한다네

잘 간수해 바깥 기운을 단단히 막아

한 사발에 향기 가득 떠도는구나

-범해선사, 『초의차』

 

차(茶)의 즐거움

차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까이 두고 자주 마시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다도' 때문일 것 같다. 실제로 일일이 다 지키려면 번거롭다. 하지만 초의선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다도는 바로 이것이었다. 차를 마실  때는 사람 수가 적은 것이 가장 고귀하다. 차를 마시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소란스럽고 소란스러우면 차를 마시는 아취를 찾을 수 없다.

 

홀로 앉아 마시면 신비롭고

두 사람이 함께 마시면 고상한 경지가 있고

3~4인이 어울려 마시는 것은 그저 취미로 차를 마시는 것이고

6~7인이 모여 차를 마시면 그냥 그저 평범할 뿐이고

7~8인이 모여 앉아 마시는 것은 서로 찻잔을 주고받는 것일 뿐이다.

-초의선사, 『다신전』 중에서

 

<초의선사가 만년에 기거한 일지암(좌)과 자우홍련사(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강진으로 유배 간 다산이 있었기에 초의선사를 만날 수 있었고, 이 우정으로 초의선사는 일지암에서 조선의 다경(茶經)으로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을 써서 조선 차의 우수성을 알렸고, 또 찻잎을 따서 덖고 우리고 마시는 법을 상세히 기록한 『다신전(茶神傳)』을 남겨 조선의 다도를 정립할 수 있고 지금 우리가 우리 차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우정의 사찰 수종사와 대흥사 기행은 다음 편에서...

2023.02.21 - [힐링 사찰 여행] - 차(茶)를 통한 두 남자의 우정이 담긴 사찰(2)(남양주 수종사)

 

차(茶)를 통한 두 남자의 우정이 담긴 사찰(2)(남양주 수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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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1 - [힐링 사찰 여행] - 차(茶)를 통한 두 남자의 우정이 담긴 사찰(3)(해남 대흥사)

 

차(茶)를 통한 두 남자의 우정이 담긴 사찰(3)(해남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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