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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찰97

민속 신앙과 불교 이야기 "비나이다~비나이다~칠성님께 비나이다." 어렸을 적에 '전설의 고향' TV프로그램을 보면 우리 어머님들께서 깨끗하고 맑은 샘물을 그릇에 담아 앞마당 북쪽 방향에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칠성님께 기도 올리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칠성신앙(七星神仰)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생로병사, 길흉화복, 불로장생, 부귀영화를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님들은 장독대 위해 정화수를 떠 놓고 칠성님께 소원을 빌어왔던 것이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또는 칠성당, 칠성전)이라는 전각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만 존재하며,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 2023. 2. 23.
사찰에서 자주 보는 한자어 중국 산신성에 있는 화산은 험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 화산이 얼마나 험준한지 이 산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퇴지투서처(韓退之投書處)에 관련된 이야기다. 한퇴지투서처는 화산의 많은 등산로 중 '창룡령(蒼龍嶺)'이라는 곳에 있다. 검푸른 용의 등줄기를 닮았다 하여 창룡령이라 불리는, 칼등 같은 가파른 절벽 능선 위의 길이다. 경사도가 40도 정도 되며 530개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이 길도 걸어 내려왔는데, 누구나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두려움을 느끼는 길이다. 당나라 최고 문장가였던 한유(韓愈, 768~842)가 화산에 올라 하산하느 길에 이 창룡령에 이르게 되었다. 하늘에 닿을 듯한 바위 봉우리가 상하 수직으로 드리워졌고, 바위 산의 능선은 칼날과 같았다. 좌우의 낭떠러지 골짜기가 천.. 2023. 2. 23.
공주 마곡사, 일제 시대 우리 민족 선각자들 정기가 어린 사찰(2) 마곡사는 우리나라 7대 산지 승원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7대 산지 승원은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를 일컫는다. 봄에는 마곡사의 봄 벚꽃 풍경이 좋고 가을에는 갑사의 가을 풍경이 좋다는 뜻으로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 일컬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곳이며 예로부터 길지로 이름난 곳이다. 공주 서쪽 유곡과 마곡사는 예로부터 전란, 흉년, 전염병 등의 삼재가 침범하지 않는 전국 10대 명당 중의 한 곳이다. 물이 태극 모양이나 S자로 흐르는 곳은 거의 명당이다. 태극 모양이면 물이 느리게 흐르면서 주변에 수기(水氣)를 충분하게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곡사 인근 지역은 변혁의 시대에 생명과 안전을 의탁하여 찾아드는 사람들로 붐볐다. 백범 김구 선생도 쫓겨다니다가.. 2023. 2. 23.
마곡사와 백담사, 일제 시대 우리 민족 선각자들 정기가 어린 사찰(1)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8.29~1944.6.29)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집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1896년 선생은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 ..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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