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름다운 사찰97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탑(塔)의 기원과 시대별 형태 탑의 기원 산문(山門)을 통과하여 사찰 경내에 진입하게 되면 가장 먼저 사찰의 중앙에 위치한 탑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찰을 방문하게 되면 탑보다는 불전(佛殿)을 먼저 방문하고, 탑을 불교신앙의 대상이 아닌 오래된 역사적 문화 유물로서 그저 바라볼 뿐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불교 신앙으로서의 탑의 본질적 가치를 알고 있지는 못한다. 탑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의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인 '투파(thupa)'를 한자음으로 옮긴 것인데 원래 '무덤'이란 뜻이다. 많은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고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다비[1]했더니 수많은 신골(身骨)과 사리[2]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때 제자들이 부처님 사리를 서로 더 많이 가져가 탑을 세우려고 했는데, 나.. 2023. 3. 7. 화성 용주사,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3) 조선시대 정조 왕의 삶과 통치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지니고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에 비견될 만큼 비극적인 이야기이고, 정조 시대의 문화 융성과 수원 화성 등과 같은 건축의 발전은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만큼 찬란하게 발전하였고, 정조의 영특함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만큼 크고 위대했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 장조의황제(재세 : 1735년 음력 1월 21일~1762년 음력 윤 5월 21일)는 영조와 영빈 이 씨의 아들로 1735년(영조 11)에 태어나 1736년(영조 12)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3세가 되었을 때 이미 『효경』을 외울 정도.. 2023. 3. 6. 홍련암과 보리암,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해수관음도량(2) 2005년 4월 5일에 양양에서 일어난 큰 산불로 낙산사의 대규모 전각이 소실되었다. 당시 산불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전부터 낙산사 주변에서 물을 뿌리며 확산을 막던 소방헬기들도 다른 곳의 불을 끄느라 도저히 낙산사로 올 수 없었고 그나마 온 소방차가 오히려 불에 탈 정도였다고 한다. 낙산사의 승려와 신도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고작 소화기 따위로 이 큰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낙산사 화재 당시 홍련암 앞까지 불길이 번졌지만 홍련암은 이를 가까스로 피해 화재 이전부터 볼 수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금의 홍련암을 볼 수 있다. 이후 낙산사가 가장 번성하였던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이 났고,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불사에 착수 2007년 4월 5일 복원이 완료되었고 지금의.. 2023. 2. 27. 보문사와 향일암,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해수관음도량(1) 우리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의욕이 떨어질 때, 또는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할 때 주로 산과 바다로 달려간다. 아침부터 운전해서 바닷가에 다다를 때쯤이면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돼서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특히 아침 바다 해변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고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원시 시대부터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도처로 4대 해수관음도량 중 3곳(석모도 보문사, 돌산도 향일암, 남해도 보리암)은 바다를 바라보는 섬에 있고, 나머지 한 곳(낙산사 홍련암)은 강원도 양양 절벽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섬에 있는 사찰도 이제는 전부 다리가 놓여 언제든지 마.. 2023. 2. 24.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