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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20

원통전과 관음전, 사찰에는 주로 어떤 건축물(전각)들이 있을까?(5)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말인데,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며 모든 중생의 번민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는 권능을 가졌다. 그러므로 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하지만 보통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퍼트린 경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귀의합니다'"만 외치면 누구라도 사후에 구제될 수 있다고 하였기에 하층민 사이에서 널리 신앙되었다. 미륵이 내세(미래)의 중생을 구제해 주는 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은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이기 때.. 2023. 3. 24.
홍련암과 보리암,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해수관음도량(2) 2005년 4월 5일에 양양에서 일어난 큰 산불로 낙산사의 대규모 전각이 소실되었다. 당시 산불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전부터 낙산사 주변에서 물을 뿌리며 확산을 막던 소방헬기들도 다른 곳의 불을 끄느라 도저히 낙산사로 올 수 없었고 그나마 온 소방차가 오히려 불에 탈 정도였다고 한다. 낙산사의 승려와 신도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고작 소화기 따위로 이 큰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낙산사 화재 당시 홍련암 앞까지 불길이 번졌지만 홍련암은 이를 가까스로 피해 화재 이전부터 볼 수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금의 홍련암을 볼 수 있다. 이후 낙산사가 가장 번성하였던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이 났고,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불사에 착수 2007년 4월 5일 복원이 완료되었고 지금의.. 2023. 2. 27.
보문사와 향일암,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해수관음도량(1) 우리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의욕이 떨어질 때, 또는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할 때 주로 산과 바다로 달려간다. 아침부터 운전해서 바닷가에 다다를 때쯤이면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돼서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특히 아침 바다 해변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고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원시 시대부터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도처로 4대 해수관음도량 중 3곳(석모도 보문사, 돌산도 향일암, 남해도 보리암)은 바다를 바라보는 섬에 있고, 나머지 한 곳(낙산사 홍련암)은 강원도 양양 절벽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섬에 있는 사찰도 이제는 전부 다리가 놓여 언제든지 마.. 2023. 2. 24.
마곡사와 백담사, 일제 시대 우리 민족 선각자들 정기가 어린 사찰(1)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8.29~1944.6.29)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집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1896년 선생은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 ..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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