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수필집에서 '산문(山門)에 들어서며...'라는 구절의 수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사찰은 산에 있으니 산에 있는 문(門)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산문은 보통 삼문(三門) 또는 산문(山門)이라고 불린다. 산문(山門)의 순서는 대개 일주문(一株門), 천왕문(天王門) 또는 금강문(金鋼門), 불이문(不二門) 또는 해탈문(解脫門) 순으로 되어있고 일주문(一株門)부터 통과하여 사찰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사찰(寺刹)은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 도량이자 불법(佛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제도하는 건축물이다. 스님들은 사찰에 머물려 수행 정진하고 부처를 대신해 깨달음의 내용을 전달하여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한다. 사찰은 많은 대중들이 모여 살며 집회를 하고 여러 행사를 하는 곳이라 하여 상가람마(sangarama)의 준말로서 '가람'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붓다의 불법의 도를 선양하고 구현하는 곳이라 하여 '도량(道場)'이 라고도 한다. 또 깨끗한 집이라 하여 '정사(精舍)', 세속적인 갈등과 번민을 초월한 곳이라 하여 '출세사(出世舍)', 혹은 청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하여 '청정원(淸淨院)'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초의 사찰은 붓다가 제자들과 함께 기거하며 수행하고 설법하시던 죽림정사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세운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초문사(肖門寺)이다.
사찰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문, 전, 각, 탑 등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사찰로 여행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건물은 일주문(一株門)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교통이 너무 발달하고, 도로가 사찰 안까지 포장되고 주차장이 있어서 어떤 사찰들은 일주문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본 건축물까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찰을 제대로 감상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사찰이 시작되는 산문(山門) 일주문부터 들어가야 한다. 마음을 정화하고 길 따라 사색하면서 세속의 번뇌를 잠시라도 놓아버리고 다 같이 피안(彼岸)[1]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일주문(一株門)
산사로 들어가는 첫째 문이라 하여 '산문(山門)'으로도 불리는 일주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집에 들어가기 위한 현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관에는 무엇이 있을까? 예전에는 현관문에 문패가 부착되어 있어서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일주문에도 어떤 절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문패와 같은 현판이 있으며, 현판에는 보통 사찰이 위치한 산의 지명과 절이름을 합쳐서 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은 '영취산통도사', '가야산해인사'와 같이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나 일부 사찰의 경우 다르게 표시되기도 한다.
절에 따라서는 사찰의 격을 나타내고 있는데 범어사의 경우에는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 '金井山梵漁寺(금정산범어사)'라며 두 개의 현판을 내걸고 가운데 작은 현판에는 '曹溪門(조계문)'을 적어 선(禪) 수행 도량임을 나타내고 있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여느 사찰의 일주문과 달리 거대한 석주(石柱)로 웅대한 지붕을 받치게 하는 독특한 구조로 일주문 중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이 석주는 1718년 세운 이래로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의 경우에는 큰 현판을 횡으로 크게 걸고 '靈鷲山通度寺(영취산통도사)'를 적고 있으며 그 아래의 좌우기둥에다 '佛之宗家(불지종가)', '國之大刹(국지대찰)'이라는 주련을 붙여 불보사찰임을 나타내고 있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는 간단하게 '伽倻山海印寺(가야산해인사)'로 현판하고 있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을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잘 살펴보면 어떤 건물이 일주문인지 알 수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처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문 밖의 세속적인 세상에서 진리(眞理)의 세계로 들어섬을 의미하는 바이니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경내에 들어가야 한다.
참고로 일주문 또는 사찰의 초입에서부터 대웅전 등이 위치한 절의 중심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가지고 있는 사찰들 중에는 오대산에 위치한 '월정사 전나무숲길', 양산 '통도사 무풍한송길', 조계산 '선암사 승선교 가는 길' 등이 있고 모두 다 아름다운 길이나 이 중에 월정사 숲길은 강원도의 시원한 계고과 하늘로 쭉쭉 뻗은 푸른색의 전나무숲이 어우러져 있어서 길을 걷는 순간 일상생활에서 가져온 번뇌를 모두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천왕문(天王門), 산문(山門)에 들어서며(2)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탑(塔)의 기원과 시대별 형태
[1]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런 경지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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