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면서 협시보살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 조각상으로 모시기도 하고, 탱화로 그려지기도 한다. 대세지보살이 아닌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로 모시는 양식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양식이다.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이는 고려 말 국가적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한 지 8년 후 홍건적이 일어나 원나라에 대항하면서 고려 영토로도 4만 명이 침입하였다. 1361년 10월에는 다시 10만 대군을 이끌고 재차 침입, 공민왕 등은 안동까지 피난을 가야만 했다. 이성계, 최영 등 여러 장수들의 활약으로 홍건적을 몰아냈지만 고려도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면서 영주들끼리 전쟁을 벌였고, 1336년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섰지만 지방의 영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이를 틈타 대마도를 근거지로 해 '왜구'라고 불리는 해적들이 영주들의 후원을 받으며 고려와 명나라의 해안 지방을 휩쓸며 큰 고통을 주었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왜구가 어디로 상륙할지 알 수 없는 데다 홍건적과의 전쟁으로 국력도 약화되어 있던 터라 고려 조정에서는 해안가와 섬에 사는 백성들에게 모두 내륙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성들을 지킬 수 없으니 섬을 비우는 작전을 쓴 것이다.
몽고와의 30여년 전쟁으로 많은 백성들이 고난을 겪은 뒤 다시 100여 년 뒤에 큰 환란에 휩싸이면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백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 무렵에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시는 양식이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졌고, 지방보살은 '지옥 중생이 모두 제도 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誓願)을 한 보살이다. 이에 비해 중생 구제의 신앙적 측면이 약한 대세지보살이 시대적 요청에 의해 지장보살로 대체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 조성된 아미타삼존상으로 강진 무위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성종 9년(1479년)에 조성된 불보살상으로 역시 지장보살이 관세음보살과 함께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또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후불벽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도 같은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지장ㆍ관세음보살을 협시로 하고 주존불을 석가모니불로 바꾸는 양식도 등장했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을 위해서는 현세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주존불을 석가모니불로 하고 정토세계로 이끌어 줄 지장보살과 세간 어려움을 구원해 주는 관세음보살을 같이 모시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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