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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사찰47

봉암사, 살아 생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사찰(2)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서기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하였다. 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을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여있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고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라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 그 후 봉암사는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고려시대에도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불교중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대선찰이다. 그런데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 2023. 3. 29.
봉암사와 봉정암, 살아 생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사찰(1) 우리나라 불교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님들의 결사(結社)[1]를 찾아보면 고려후기에 이루어졌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있다. 정혜결사는 정(定)과 혜(慧)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1188년 보지지눌(普照知訥)의 주도하에 시작된 결사이다. 당시 고려불교는 세속화되면서 승려들이 도는 닦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흐름이 있었다. 여기에 염증을 느낀 보조지눌은 당시 승과(僧科)에 합격한 엘리트였지만, 사찰의 주지로 나가지 않는다.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면서 재야로 나가 기존 불교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개성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으로 내려가 결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그 정혜결사 도량은 순천 송광사(松廣寺)였다. 경전 공부와 참선이 본래 .. 2023. 3. 27.
명부전, 사찰에는 주로 어떤 건축물(전각)들이 있을까?(6) 명부전(冥府殿)은 죽은 영혼이 가는 저승을 상징하는 곳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스님들이 49재를 지내는 장소이고, 때로는 돌아가신 분의 영정(影幀)도 안치되어 있기도 하고 유족들이 영혼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관람차 사찰을 방문했더라도 명부전 앞에서 만큼은 조용히 예의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명부전 안에는 저승의 심판관인 10대 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 안에는 저승의 왕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봉안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冥府十王像)을 안치하며, 시왕 앞에는 각각 시왕을 시봉 하는 동자상 10구가 안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판.. 2023. 3. 26.
원통전과 관음전, 사찰에는 주로 어떤 건축물(전각)들이 있을까?(5)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말인데,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며 모든 중생의 번민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는 권능을 가졌다. 그러므로 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하지만 보통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퍼트린 경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귀의합니다'"만 외치면 누구라도 사후에 구제될 수 있다고 하였기에 하층민 사이에서 널리 신앙되었다. 미륵이 내세(미래)의 중생을 구제해 주는 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은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이기 때..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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