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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사찰44

연주암과 무위사, 비운의 왕세자 효령대군의 사찰(1) 왕(王)의 조건 술을 한 방울도 못해서 왕이 되지 못한 효령대군,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은 셋째인 충녕대군만큼이나 학문적 깊이와 인격을 지녀 국왕이 될 그릇이었다. 그러나 효령대군에게는 결정적 결함이 있었으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일찌감치 눈 밖에 난 장남 양녕은 차지하고서라도 태종이 차남 효령마저 제치고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심한 것은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이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 마시기 때문이었다. 왕(王)의 조건 당시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마다 몇 차례씩 조선에 찾아오는 명나라 사신들 접대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명나라 사신들은 조선 왕들과 취하도록 마시며 조선의 왕을 시험하곤 했다. 그러니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는 .. 2023. 2. 20.
오대산 상원사, 세조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 사찰 여행(3) 상원사는 월정사에서도 차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사찰이다. 상원사를 보기 위해 들어가다 자칫 월정사를 놓치는 것도 너무 아까운 일이다. 요즈음에는 주차장까지 바로 차로 들어가는 바람에 월정사의 참 멋 중 하나인 700m가량 되는 전나무숲 길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으나 반드시 걸어 보기를 바라며, 또한 전나무숲이 시작되는 일주문의 편액은 탄허스님의 친필이니 놓치지 말고 한 번쯤 그 기상을 느껴보고 월정사와 상원사를 같이 둘러보자. 상원사 역사와 유래 세조는 자신의 형제들이 그랬듯 부스럼병이 심했다. 1463년 2월 세조는 온양 온천행을 이유로 순행(巡幸)에 나서기도 했다. 세조가 신미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와 신미의 기도에 깊이 감사한다는 .. 2023. 2. 20.
속리산 법주사, 세조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 사찰 여행(2) 속리산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정이품송이다. 1464년 조선시대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향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쪽 가지에 걸릴 것 같아 걱정하는 말을 했더니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혀 어가를 무사히 통과시켜 주었다고 해서 세조가 이 소나무에 정2품송 벼슬을 내려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 정이품송도 예전에 볼 때는 기품과 기운이 있었으나 이제는 태풍에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갈 때마다 서서히 야위어 가는 모습으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사는 것 같다. ▣ 법주사와 신미대사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은 예로부터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혀 왕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까지 피난 갔다 환궁했던 공미왕도 법주사에 들렸고, .. 2023. 2. 20.
상원사와 법주사, 세조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 사찰 여행(1) ▣ 세조의 진영(眞影) 세조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사납고 무서운 얼굴이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영화 '관상'에서의 이정재 역할과 분장, 그리고 조카를 죽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렇게 단정 짓게 된다. 현재 세조의 어진을 볼 수 있는 것으로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세조어진초안'과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합천해인사존상도'가 있어 얼굴을 추청 할 뿐이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박물관의 많은 유물들이 피란지 부산으로 옮겨져 용두동 국악원 창고에 보관되었다. 하지만 1954년 12월 26일 용두동에 화재가 일어나 조선 왕조 어진들을 보관한 창고가 불에 타는 바람에 소중한 어진들이 거의 대부분 불에 타버려 세조 어진도 이때 없어져 버렸고, 이후 '세조어진초안'이 세상에 나와 우여곡절 끝에..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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