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는 서울 근교 주말 여행지로 맞춤인 사찰이 있다. 바로 봉선사이다. 봉선사 근처에는 세조의 무덤이자 왕릉인 광릉이 있으며, 또한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도 지근거리에 있다. 불현듯 가까운 사찰에서 자연을 느끼고 산책하기에는 매우 아름답고 적당한 곳이다. 사찰이나 왕릉 방문 후 국립수목원에 차를 가지고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차량을 예약을 해야지만 주차가(1일 예약 차량 주차 대수 한정) 가능하다. 만약 예약이 어렵다면 봉선사에 주차를 하고 먼저 광릉을 관람하고, 국립수목원까지 도보로 가는 방법은 있다. 도보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고 광릉수목원까지는 평지이고 데크길로 걷기 좋게 만들어졌으니 여유를 가지고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봉선사는 서기 969년 고려 광종(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하고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선교양종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조선 예종 1년(1469년)에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한 원찰(願刹)로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89칸 규모로 중창하고 봉선사(奉先寺)라 고쳐 불렀다. 봉선사에는 '선왕의 능을 받들어 모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가 이후 중수하여 1960년 무렵부터 재건 불사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광릉
봉선사가 받는 세조가 묻힌 광릉은 "내가 죽으면 몸이 빨리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왕의 유언에 따라 무덤방은 돌방을 만드는 대신 석회다짐으로 막았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대신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겼는데 이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방과 병석을 없앰으로 해서 백성의 고통과 국가에서 쓰는 돈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무덤배치에 있어서도 최초의 동원이강의 형식이다. 지금까지는 왕과 왕비의 무덤을 나란히 두고자 할 때 쌍릉이나 세종과 소헌왕후 심 씨의 무덤인 영릉의 형식으로 왕과 왕비를 함께 묻는 방법을 취하였으나, 광릉은 두 언덕을 한 정자각으로 묶는 새로운 배치로 후세의 무덤제도에 영향을 끼쳤다. 세조가 묻힌 광릉 일대는 조선 왕실의 숲으로 관리되었으며 나무를 베는 것은 물론, 돌 하나, 풀 한 뿌리 옮기거나 캐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래서 광릉은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었고,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서 크낙새와 같은 천연기념물이 살고 있는 건강한 숲을 이루고 있다.
봉선사
봉선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경내를 걷다 보면 넓은 연못이 여기저기 아름다운 광경을 뽐내며 사찰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방문하던 시기에는 연꽃이 피지 않았지만 5월에는 연꽃축제가 열릴 정도로 화려하지만 지금은 물속에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연못길을 경유해서 사찰에 진입하면 전통적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문이나 불이문(해탈문)과 같은 다른 산문(山門)들은 볼 수 없다. 대신 이 사찰이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당당히 전각 입구에 서있다. 이 느티나무는 500여 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절입구 양지바른 곳에 심은 것이다. 예전부터 느티나무가 없는 사찰이 없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사찰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니라 사찰을 위해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 후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과 6.25 전쟁의 전란에도 다치지 않고 하늘을 떠받들 우람한 모습으로 성장해서 봉선사를 굽어보면서 지키고 있다. 마치 사천왕상처럼.....
사찰안으로 들어가면 한글 편액으로 쓰인 '큰법당'을 만날 수 있다.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큰법당은 불교 대중화에 앞장서 운허스님이 1970년 조성한 건물로, '대웅전'이라는 명칭 대신 '큰법당'이라는 한굴 편액을 달았다. '큰법당'은 한국전쟁 때 다 타버린 대웅전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새롭게 지은 것으로 형태는 정면 3칸, 측면2칸이다. 1960년대 정부의 공업화 정책으로 문화재 건축 사업에도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도입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로 정통 건축물을 모방해 제작하는 것은 당시에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한식 목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몇 사람의 목수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여 큰법당을 시공하였다. 큰법당은 전통 건축의 추녀 곡선 등 외형적인 측면에서 기존 전통 목조 기법을 정교하게 묘사하였다고 평가된다. 봉선사 큰법당은 근대 건축 재료와 구조로 전통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1960~1970년대 당시의 기술을 대표하는 사료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 이에 힘입어 큰법당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큰법당 앞 3층 석탑에는 1975년 운허 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해놓았다고 한다.
봉선사 청풍루 동편 '대의왕전'에는 약사여래석조좌상을 봉안하였는데 신심이 돈독한 불자들이 틈틈이 개금을 올려 부처님의 존안 부문만이 남아있는 모습도 있고, 여전히 많은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개금불사에 동참하기도 한다. 또 다른 편에서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디지털불전함을 설치하여 언제든지 편하게 시주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며 불교도 전통과 현재의 세태에 맞추어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큰법당 뒤편에서 높은 곳에는 '삼신각'이 자리해 있다. 보통 사찰에서는 산신, 칠성신, 독성신 이 세분을 한 곳에 모신각을 삼신각이라고 편액을 다나, 이곳에서는 각각 '산령각', '북두각', '독성각' 이렇게 각각 편액을 따로따로 다는 게 특색이 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6.25 전쟁 와중에 많은 부문이 소실되어 역사에 비해 유물이나 유적이 많지는 않다. 그중에서 일부를 찾자면 두 가지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와 '동종'이 있다.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비로자나삼신불과 권속을 그린 괘불도로 1735년 상궁 이성애가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 씨(1669~1735년)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것이다. 맑은 담채의 황색과 청색, 양록색, 녹색, 하늘색 등 밝고 화사한 색이 굵고 대담하면서도 능숙한 묵선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움직임과 옷자락의 자연스러운 주름표현, 힘찬 동세 등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왕실발원 불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동종은 왕실의 발원으로 만들어진 조선전기 대형 범종의 대표적 작품으로 예종원년(1469년)에 제작되었다. 높이 238cm, 두께 23cm로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모습이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연곽과 보살입상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가로 줄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서, 국가적인 감독으로 이루어진 범종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나 몸통에 있는 가로 띠와 보살입상 그리고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이라는 조선시대 종의 새로운 요소가 등장한 점에서 조선시대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산책로 곳곳에 다양한 야외 불상들이 있으며 거대한 미륵불 입상과 예배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봉선사 산신각에서 바라본 사찰의 전경과 봉향당 찻집에서 바라본 봉선사 경내 전경, 5~6월이면 많은 연꽃과 나무에서 꽃이 피어 사찰 방문객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주는 아름다운 전경을 선사해 줄듯 하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6.25 전쟁 등 전란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어 현대에 다시 많은 부분이 증축되어서 전통과 현대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사찰이다. 다른 능침사(신륵사, 용주사)들처럼 오랜 전통으로 방문객들에게 장엄하고 고풍스러운 맛을 주는 멋은 없으나, 넓은 연못과 아름다운 풍경, 언제든지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산책길이 평지에 잘 조성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편하다. 또한 광릉과 국립수목원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불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하는 아름답고 친근한 사찰로 재탄생된 것 같다.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1)
여주 신륵사,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2)
화성 용주사, 조선시대 왕릉과 수호사찰 능침사(陵寢寺)(3)
'문화재 관람료' 무료 전국 65개 사찰 명단과 불교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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